우리나라의 코로나 상황이 완만하지만 감소세로 확연하게 돌아서서
(아직도 일 평균 사망자 수가 꽤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이제는 재감염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걸릴 사람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어제 부로 마스크 착용 외의 방역규제가 모두 해제되었다.
마스크를 벗어 던질 수 있는 날이 오면
외면적으로는 2년 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셈이 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니, 언제나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짓밟으며
이렇게 저렇게 변화해 온 코로나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긍정적인 쪽으로만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삶의 형편이 좋기를, 혹은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나
우리의 삶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옆에 두고 사는 느낌이다.
육이오 이후의 세대는 다행스럽게도 한반도 내에서 전쟁을 겪지는 않았고
정치적으로는 권위정부 아래에서 자유를 제한 받으면서 살아야 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빈국에서 부국의 언저리까지 도약했고
그와 함께 정치적 민주화도 이루었다.
그렇긴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는 대체로 짧은 화해 무드 가운데
긴장과 대치, 도발에서 소규모 전투 등으로 살얼음판이다.
국제적으로도 ISIS가 좀 잠잠해 지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자칫 3차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어서 심히 우려스럽다.
그렇지 않더라도 코로나로 피폐화된 세계 경제에
또 다른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미세먼지가 낀 대기를 바라보며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이루어 놓은 과학 기술 문명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인간이 만든 에이아이가 인간을 지배하는 공상과학영화처럼
인간의 능력 또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듯하다
불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듯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여유 있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순간, 뭔가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순간은 천양지판이다.
그러한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간 그런 존재이리라.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글이라도 적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현재를 향유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이리라.
또, 내 차례의 어머니 간병을 마친 다음에는
좋아하는 탁구에 매진하고
(이제는 예전처럼 아무곳에나 가서 탁구를 칠 수 있으리라)
국내를 떠나 해외까지도 발바닥에 땀나게 돌아다니고
또,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부지런히 적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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