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문예창작반(문창반)29 [내재율 제3집] 권혜경(86) -- 들꽃 들꽃 권혜경(86) 어둠이 산등성일 타고 내려올 무렵.겨울부터 지금까지 한이 서린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저만치들려온다. 까맣게 그을린 초동의풀피리 같은 소리가 촌부(村婦)의 구릿빛 살갗을 닮은산언덕길 흙 위에누군가의 발자취가 남겨졌던가.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가.코끝을 간지르는 남풍에무심히 떨고 있는 빛바랜 무명 치마 같은 꽃잎.길섶에 무리지어 피어있는들꽃. 지천에 뒹구는 돌덩이, 흙덩이만큼그렇게 온 산을 메우고 있건마는, 오히려우리 누나 고운 미소 같은 꽃이여.누구나 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더욱이, 애절한아름다움이여. 고이 생명이 침전해 있는 동안모든 웃음과 울음 캐어 주는영원히 시들지 않는 샘처럼생명력이 충일해 있는 이 들꽃.사랑보다 미움이 많았던 일월들이괴롭히며얼마나 많.. 2024. 11. 25. [내재율 제3집] 권혜경(86) - 길 길 권혜경(86) 미풍이나의 뺨을 스치옵니다. 이제 막 움트는 어린 풀잎.투명한 이슬을 업은 채,영롱한 아침의 빛정갈한 아침의 정기를 비추옵니다. 길 옆에 아름드리 나무들옛날・옛적부터 이렇게서 있읍니다.머언 교회의 종소리유유히 아침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나 이제걷고있읍니다.어머니가 걷던할머니가 걷던하이얀 모시 적삼 길을. 2024. 11. 22. [내재율 제3집] 홍순오(86) -- 가을에 가을에 홍순오(86) 활대 휘저으며음표 하나씩 툭툭 터뜨리고언덕 넘어가는 소리아직 열기로 남은 가슴만은 함께 보내지 말아야지. 온해[百日]는 길었지만북향 가라 가라애처로운 손짓에도모질게 남은 날기짓 어제는 왜이유없는 떨림으로 휘파람도 불며오지않을 사람을기다려야 했던가. 눈을 살짝 감으면글썽이는 눈물마저 몰고다니는 오후시려오기 전채곡채곡 쌓아두는 가을소리. *날기짓 - 날갯짓의 오기인 듯. 2024. 11. 21. [내재율 제3집] 홍순오(86) -- 거리에서 거리에서 홍순오(86) 지금쯤은흰 페인트로 덧칠된 이 도시를태양이 작열할 터인데.콩알만한 푸르름이 그리워어설픈 몸짓으로 거리에 서면빨강, 파랑 구별없이질주하는 온갖 차량들.두 사람 굳은 악수춘향전 한 대목으로 피어오르는 고속터미널.떨어져 있으면 눈물이고 이별일지라도오늘은 웃음이고 사랑이자.시월 플라타너스 잎처럼 떠다니는조각난 노트장누구 집 처녀가 밤새 써놓고 아침이면보내지 못한 사연일까내가 받아줄까.찡그리던 하늘은 마침내 폭탄을 내리뿌리고아직 미완으로 남은 책상 구석 고이 간직한시 한편을 채워 줄 시어 인양단 하나의 폭탄도 빼지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방패하나 가지지 않은 여름 거리엔내일 아침이면 수평너머로 부터파닥파닥 흰 날개를 저으며 올 한줄 시를 기다리는사람 사람들. 2024. 11. 20. 이전 1 2 3 4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