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호수 시편10 정지용 - 호수 1 호수 1 정지용 얼골 하나야손바닥 둘로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호수만 하니눈 감을 밖에. - 정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에 가면 우선 복원된 그의 생가를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향수'를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어서 또 좋다. 거기다 생가 옆에서 '향수 인력'이라는 직업 소개소를 발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정지용의 또 다른 대표작이자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친근한 시인 '호수 1'은 1930년 "시문학"에 발표되었으며, 1935년 그의 첫 시집인 "정지용시집"(시문학사)에 실렸다. 정지용이 마음에 품었던 호수만큼 크지는 않지만 옥천에는 이 시를 접할 수 있는 풍광이 좋은 교동저수지가 있다. 지용을 발걸음에 담으며 30분 정도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2024. 12. 19. 이영광 - 고복 저수지 고복 저수지 이영광 고복 저수지 갔다최강 한파가 보름 넘게 못물 꽝꽝 얼려놓았다저수지 주변 매운탕 집 메기들이 이곳 출신이 아니라는 뻔한 사실 하나를 입증하기 위해서도이렇게 광범위한 증거가 필요하다광범위는 광범위보다 더 넓다 전부니까그게 사실인데도 우리는 더 얘기했다두 달 만이었고 화제는 쉽기만 하고 짜증스러운정치여서, 이 추위 가고 날 풀리면 혹메기수염 매단 메기들이 풍악처럼 물살에 밀리는자연을 볼까, 자연산을 볼까, 깔깔거렸다 고복 저수지 다시 갔다최강 한파가 한 달 넘게 못물 꽝꽝 얼려 놓았다뻑뻑한 죽을 젓듯 떠다니거나 펄에 웅크려 겨울을 나는메기들의 마른 유족들이 얼음장 아래 없다는 뻔한 소문 하나를 팔기 위해서도 이렇게 광범위한 위증이 필요하다광범위는 광범위보.. 2024. 10. 18. 이영광 - 저수지 저수지 이영광 마른 아랫배가 쩍쩍 갈라지자 저수지는 물 빠진 빈 그릇이 되었다저수지 만한 입을 가진 커다란 울음이 되었다 울음은, 풍매화 홀씨들을 공중에 날려 보내는텅 빈 바람으로 떠났다가돌아와 꽃대궁을 흔드는 고요로 머물다가마른 땅 밑 먼 수맥을 아슬히 울린다 저 물 빠진 황야로 걸어 들어가한나절을 파헤치던 사람들과주둥이를 빼고 목메다 간 산짐승들의 발자국을 만지는 약손이 된다 작은 울음들이 목청껏 울고 간 먼 골짜기까지가 울음의 커다란 입이다챙챙거리는 소리들이 간신히 잠든 지층까지가울음이 고요히 타는 입이다 나는 울음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 귀기울여본다큰 울음은 작은 울음들로 빽빽하다큰 울음은 오늘도 울음이 없다 이영광. [그늘과 사귀다]. 랜덤하우스. 2007. 78-79.. 2024. 10. 18. 이영광 - 마른 저수지 마른 저수지 이영광 잔물결도 패거릴 지어 몰려다니면죽음의 커다란 입이 되지요번쩍이는 죽음의 이빨들이 되지요석삼년에 한번쯤 인육을 삼키던 이 저수지는백년간 서너 차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죽음의 말라붙은 입속을 샅샅이 파헤쳐보았지만사라진 몸, 데리고 나온 적 없습니다살덩이를 뼈째로 녹이며 큰 물결들이깊은 곳에서 거칠게 찢어선 삼켰겠지요물 빠진 저수지 바닥엔 흙먼지들이 몰려다니고굶주린 바람이 서로 부딪쳐 으르렁대고 있어요물을 호령하여 사람을 빨아당기던 그놈들이요,구름처럼 무정한 흑막입니다어서 새 옷을 입혀달라고 악다구니하며벌거벗은 괴수들이 뛰어다니고 있어요골짜기 가득 황량한 아가리를 벌리고 십년 만에 또 한번 대청소를 하고 있어요 이영광. [아픈 천국]. 창비. 2010... 2024. 10. 18.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