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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384

원동우 - 창혼唱魂 창혼唱魂                         원동우 어쩔 길 없이 나무는 꽃을 밀어낸다더 갈 데 없는 가지 끝에 꽃들은 피었다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낭떠러지에 매달린 어린것들갓 태어나 어여쁠 때 지는 것이 목메어바람조차 꽃잎을 건드리지 못한다 나무 밑을 지나다 걸음을 멈춘 비구니가 꽃그늘을 올려다본다 그 얼굴 위로떨면서 자꾸만 떨면서 꽃들은 몸을 던진다잔주름이 가득한 비구니 눈가에 눈물인지독경인지 반짝이는 봄이 흘러내린다 원동우. [불교문예]. 2017 봄호.  - 어린 꽃과 낙화, 또 그 아래를 지나는 늙은 비구니의 대비를 통해 봄의 한 장면을 잘 포착했다. 김소월의 '초혼'이 격정적이라면, 이 시는 나지막하게 죽음, 그것도 봄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2024. 10. 4.
김광규 - 바다의 통곡 바다의 통곡                          김광규 이리호 호반에서 혹시존 메이너드*를 만나보았나디트로이트와 버팔로를 왕복하는 페리선조타수 존은 갑자기 화염에 휩싸인 배를죽음 무릅쓰고 호반에 안착시켜 승객들모두 구하고 자신은 조타실에서 탈출하지 못했다그의 몸은 백여 년 전에 연기로 사라졌으나그의 혼은 지금도 청동 기념판 속에 살아 있다치욕스럽구나 영혼을 잃고 육신만 남은 무리들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침몰했을 때3백여 승객 물결 사나운 맹골수로에 버려둔 채자기들만 구명정 타고 육지로 도망친 선원 팀승객의 귀중한 목숨보다 선주의 검은 돈을 위하여선박의 평형수와 무게중심을 팔아먹고가라앉는 배 속에 아이들 가두어 죽이고침묵의 장막 뒤로 숨어버린 무리들도저히 인간으로 용납할 수 없어분노와 절망이 온 .. 2024. 9. 27.
김광규 - 빗소리 빗소리                   김광규 반가워라 한여름 빗소리손가락 마디만 한 대추나무 잎한 뼘쯤 자라서 반짝이는 감나무 잎어느새 탁구공만큼 커진 밤송이쟁반처럼 넓은 후박나무 잎더위에 지쳐서 떨어져버린능소화 주황색 꽃잎 들을후두둑 다급하게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뒤따라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오랫동안 가물었던 논과 밭훅훅 열기를 뿜어대는 도심의 차도와 고층 아파트곳곳을 흠뻑 적시며플라타너스 가로수 통째로 흔들고때로는 돌개바람으로 창문을 부숴버릴 듯 두들기며장엄한 음향 들려주네아무도 흉내 낼 수 없이 거센 비바람사이사이에 매미들의 합창꾀꼬리와 지빠귀들 틈틈이 지저귀고천둥소리 북소리처럼 울리며한나절 내내 또는쉬엄쉬엄 하루 종일땅 위의 온갖 나뭇잎들 모조리 씻겨주고섭씨 36도의 더위 시원하.. 2024. 9. 26.
박노해 - 그 한 사람 그 한 사람                     박노해 가을 나무 사이를 걸으며먼 길 달려온 바람의 말을 듣는다정말로 불행한 인생은 이것이라고 좋고 나쁜 인생길에서 내내나를 지켜봐 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내게 귀 기울이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나길을 잘못 들어서 쓰러질 때에도한결같이 나를 믿어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고난과 시련을 뚫고 나와상처 난 몸으로 돌아갈 때에도 아무도 나를 기다리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빛나는 자리에서나내가 암울한 처지에서나내가 들뜨거나 비틀거릴 때나 나 여기 있다, 너 어디에 있느냐만년설산 같은 믿음의 눈동자로 지켜봐 주는 그 한 사람내 인생의 그 한 사람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2022. -- '그 한 사람'은 당연히 '어머니'일 것.. 2024.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