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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07

[내재율 제3집] 김은정(86) -- 한여름의 신기루 8월은 정말이지 더울 권리조차도 없이 무덥다. 극지방에서 가장 큰 빙산 하나쯤 서울 한복판에 가져다 놓더라도 그 기세는 꿈쩍도 않을 꺼다. 어제 오후에는 전화세를 내러 근처 은행에 가서 2시간 가량 에어콘 덕에 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시원하게 보냈다. 그러나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 오늘은 방법을 바꾸었다. 지하는 시원할 테지. 몇 권의 책을 들고 집을 나섰다. 역으로 가는 도중 정부의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식의 도로 정비와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채 뿌리도 못 내리고 말라가는 이름 모를 꽃들이 나를 더욱 덥게 만들고 아시아 경기 후 삭막해 질 경기장 주변 생각이 더위에 대한 짜증을 부채질 한다. 선애역에 도착하니 예상했던 대로였다. 무조건 표를 사서 올라 탔다. 지하철 2호선. 어떤 머저리 같은 사람이 비싼.. 2024. 12. 9.
[내재율 제3집] 김은정(86) -- 광경 광경                     김은정(86) 진주빛 바랜 시멘트 담장마다누런 이불 하나씩 덮고 누운 오후이제는 가시 돗힌 화려함이여남은 게 꽃잎으로 흐트러진 너.지나는 모든 것 발걸음마저시계에 쫓기듯 서슴지 않고 왔다간 사라져제철엔 꽃호박이라도 붉게 타고무진장 쏟아져 내리고땅거미는 가장 슬픈 표정을 하고는제 그림자를 주워올린다. 2024. 11. 27.
[내재율 제3집] 권혜경(86) -- 탄금대에서 탄금대에서                        권혜경(86) 중원의 푸르름 아래펼쳐있는 흐름을 알고 있는가.12만의 귀가그 옛날 그곳에 있음에도대문산이 전해주던가실왕이 아닌 진흥왕을 위한탄금 소리가,슬퍼할 수 없는 곡조의 눈물인양금휴포에 삼켜진다.알고 있는가.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물새의 날개사이로천오백 년 한이뽀얀 물안개처럼 피어오름은,천둥소리에 끊긴열두 줄의 화신처럼그 어느 날 가실왕의 우륵비운의 탄주가에 닥쳐온고추 같은 설움은,한순간 꺼져가는 소나기처럼,귀를,눈을,매장한다. 2024. 11. 26.
기형도 - 폭풍의 언덕 폭풍의 언덕                         기형도  이튿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간유리 같은 밤을 지났다. 그날 우리들의 언덕에는 몇 백 개 칼자국을 그으며 미친 바람이 불었다. 구부러진 핀처럼 웃으며 누이는 긴 팽이 모자를 쓰고 언덕을 넘어갔다. 어디에서 바람은 불어오는 걸까? 어머니 왜 나는 왼손잡이여요. 부엌은 거대한 한 개 스푼이다. 하루종일 문지방 위에 앉아서 지붕 위에서 가파른 예각으로 울고 있는 유지 소리를 구깃구깃 삼켜넣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아버지가 끊어뜨린 한 가닥 실정맥이야. 조용히 골동품 속으로 낙하하는 폭풍의 하오. 나는 빨랫줄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아버지의 런닝셔츠가 흙투성이가 되어 어디만큼 날아가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헤아려 보았다. 공.. 2024.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