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408 정완영 -- 직지사 운(韻) 매양 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철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랄까오늘은 외줄기 길을 낙엽마저 묻었고나 뻐꾸기 너무 울어싸 절터가 무겁더니꽃이며 잎이며 다 지고 산날이 적막해 좋아라허전한 먹물 장삼을 입고 숲을 거닐자 오가는 윤회의 길에 승속이 무에 다르랴만사문은 대답이 없고 행자는 말 잃었는데높은 산 외론 마루에 기거하는 흰 구름 인경은 울지 않아도 산악만한 둘레이고은혜는 뵙지 않아도 달만큼을 둥그노니문득 온 산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노메라 - 화자는 늦가을 직지사에 들렀을 때의 느낌을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1,2 연이 픙광을 묘사하고 있다면, 3,4연에서 화자는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인경은 울지 않아도 산악만한 둘레이고'는 조금 어려운 구절인데,.. 2025. 1. 7. 김영랑 --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내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도쳐오르는 아침날빛이 뻔질한 은결을 도도네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듯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있는곳내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1930년 "시문학"지에 발표 - 김영랑의 이 시는 구체적인 의미보다는 리듬감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백잎이(동백꽃이 아니라) 환기시키는 정서를 "내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 강물이 흐르네"라고 표현한 것은 흡사 마술의 주문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에 흐르는 강물, 그것도 끝없는 강물. 구체적으로 와닿는 의미를 찾기는 어려우나,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정서이고 그 진폭 또한 만만치가 않다. '뻔질한 / 은결'이라는 표현도 쉽게 풀이가 되지는 않는다. 뻔질한은 동백잎의 반질거리는 속성을 상기시.. 2025. 1. 7. 이찬 -- 아오라지 나루 코스모스 우거진 연천(漣川) 마을엔한글 공부 소리 박넝굴보다 더 낭자하고 아오라지 나루는 새 서울의 나루여서야반 준령 오십리 길도 멀지 않았다. 나루는 기망(旣望)의 달빛이 백사를 깔고묘망(渺茫)한 금반(金盤) 우에 은장기를 두고 나룻배는 한 척인데서울 손은 천에도 또 몇몇천 기다려도 기다려도 못 건너는 나루에삼칠제의 새 소식이 새 소식을 부르니 나루지기 할아버지의 늙은 볼에도 웃음이 돌며휘연히 아오라지의 긴긴 밤도 밝어오는 것이었다. 1946년 "우리문학"에 실림. 기망(旣望) : 음력으로 매달 열엿샛날.묘망(渺茫) : 넓고 멀어서 바라보기에 아득함.금반(金盤) : 황금으로 만든 쟁반 따위. 삼칠제 : 수확한 곡식의 3할은 지주가 가지고 나머지 7할을 소작인이 가지던 제도.휘연히 : 훤한 듯하게 -.. 2025. 1. 6. 이찬 -- 동절(冬節) 하늘은 가없이 푸르고 멀고봄 아닌 하늘엔 한 개 나는 새의 가벼운 나래도 없고 눈덮인 연산이 젊은 과수처럼 옹조그리고만 앉어안타까운 날과 날을 바람은 미친 듯 오르락내리락 그 서슬에 집웅이 떨고 나무나무 황철나무도 떨고양지바른 추녀 밑 청승맞게 턱 괴인 괭이수염도 떨고 스산한 계절!말없는 나의 강은 무슨 생각에 잠기었느냐 네 좋아하는 구성진 물방아의 콧노래도 오늘엔 없고네 즐기는 재롱둥이 애기풀의 고운 춤도 오늘엔 없고 흐르고 흐른 천리 연변두팔 벌려 반기는 그 고운 꽃바위들의 기억도 다시 찾을 수 없는 꿈 오늘도 너의 음울한 주거 요요(寥寥)한 변두리엔덧없는 조석을 몰아 지나가는 세월의 허허한 공음(蛩音)만 울려드나니 아하 말이 없어도 나는 아노라고고(孤苦)한 너의 가슴 터지려는 너의 가슴 가막까치 우.. 2025. 1. 4. 이전 1 2 3 4 5 ··· 10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