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양 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
철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랄까
오늘은 외줄기 길을 낙엽마저 묻었고나
뻐꾸기 너무 울어싸 절터가 무겁더니
꽃이며 잎이며 다 지고 산날이 적막해 좋아라
허전한 먹물 장삼을 입고 숲을 거닐자
오가는 윤회의 길에 승속이 무에 다르랴만
사문은 대답이 없고 행자는 말 잃었는데
높은 산 외론 마루에 기거하는 흰 구름
인경은 울지 않아도 산악만한 둘레이고
은혜는 뵙지 않아도 달만큼을 둥그노니
문득 온 산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노메라
- 화자는 늦가을 직지사에 들렀을 때의 느낌을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1,2 연이 픙광을 묘사하고 있다면, 3,4연에서 화자는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인경은 울지 않아도 산악만한 둘레이고'는 조금 어려운 구절인데, 않아도 다음에 '그 소리가' 정도를 넣어서 읽으면 좀 쉬울 듯하다. 3연이 '흰 구름'이 자신의 이상적 자아를 제시하고 있다면, 마지막 연의 '깃 떨구고' 가는 '산새 한 마리'는 현실적 자아와 그 운명을 상징하고 있다고나 할까? 연 시조의 형식으로, 산사에 들렀을 때의 느낌과 삶에 대한 소회를 군더더기 없이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산날 : 산등성이
(김천에 사는 친한 선배가 생일을 맞이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김천에 들렀다가 몇 년 만에 다시 직지사를 찾았다. 선배로부터 큰아버지가 유명한 시인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지사 입구에 시비가 떡 하니 서 있을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리고, 직지사 옆에 있는 문학관 또한 선배의 큰아버지를 기념하는 것인 줄 몰랐다. 시 역시도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명편이었다.)
[직지사 운 노래. 심순보 곡. 가수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챗GPT는 이상은이라고 하지만 믿음이 잘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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