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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한국현대시37

김기림 -- 기상도 - 세계의 아침 비눌돋힌해협은배암의 잔등처럼 살아났고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오만한 풍경은 바로 오전 7시의 절정에 가로누웠다. 헐덕이는 들 우에늙은 향수를 뿌리는교당의 녹슬은 종소리.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려무나.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윤선을 오늘도 바래보냈다. 국경 가까운 정거장.차장의 신호를 재촉하며 발을 구르는 국제 열차.차창마다'잘 있거라'를 삼키고 느껴서 우는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골들.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 본국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오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의 가족들.산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다녀오리다."선부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에게 맡기고자리로 돌아간다. 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잎.. 2025. 4. 26.
박용철 -- 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골잭이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모양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이도 못 잊는 마음쫓겨가는 마음일들 무어 다를 거냐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앞대일 어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간다 1930년, [감상]박용철의 시로 알려진 것은 이 시가 그의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도 김수철이 이 시의 한두 구절을 차용한 "나도야 간다"라는 노래가 인기를 끈 것과 무관하지 않다. '떠나가는 배'에 빗대어 나도 떠나고자 하지만 정든 것들과, 또 미래에 대한 불안('앞애일 어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2025. 4. 25.
김소월-- 접동새 접동접동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읍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오오 불설워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읍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 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참아 못잊어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2호. 1923년 3월/ . 1925년. 매문사. 접동새는 두견(이)의 우리말 이름이다. 두견과 소쩍새는 다른 새이지만 중국과 우리 전통 시(가)에서는 구분을 하지 않았다(자연과 거리가 멀어져 이 새도 필자는 잘 모른다. 오늘 아침에 본 잿빛 새가 설마 접동새는 아니겠지?). 두견 혹은 소쩍새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현대시는 서정주의 '귀촉도.. 2025. 4. 11.
김영랑 -- 두견 울어 피를 뱉고 뱉은피 도루삼켜평생을 원한과슬픔에 지친 적은새너는 너른세상에 서름을 피로 새기러오고네눈물은 수천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놓았다여기는 먼남쪽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곳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후젓한 이새벽을 송기한 네울음 천길바다밑 고기를 놀래이고하늘가 어린별들 버르르 떨리겠고나몇 해라 이삼경에 빙빙 도--는 눈물을 슷지는 못하고 고힌그대로 흘리웠느니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몸은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무섬증 드는 이새벽가지 울리는 저승의노래저기 성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찬소리여달빛 오히려 마음어둘 저 흰등 흐느껴가신다오래 시들어 파리한마음 마조 가고지워라비탄의넋이 붉은마음만 낱낱 시들피나니짙은봄 옥속 춘향이 아니 죽였을라듸야옛날 왕궁을 나신 나히어린 임금이산골에 홀히 우시다 너를 따라가시.. 2025.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