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눌
돋힌
해협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
오만한 풍경은 바로 오전 7시의 절정에 가로누웠다.
헐덕이는 들 우에
늙은 향수를 뿌리는
교당의 녹슬은 종소리.
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려무나.
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윤선을 오늘도 바래보냈다.
국경 가까운 정거장.
차장의 신호를 재촉하며
발을 구르는 국제 열차.
차창마다
'잘 있거라'를 삼키고 느껴서 우는
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골들.
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
본국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오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
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의 가족들.
산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다녀오리다."
선부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에게 맡기고
자리로 돌아간다.
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잎.
그 여자의 머리의 오색의 리본.
전서구들은
선실의 지붕에서
수도로 향하야 떠난다.
· · · · · ·수마트라의 동쪽. · · · · · ·5킬로의 해상 · · · · · · 일행 감기도 없다.
적도 가까웁다. · · · · · ·20일 오전 열 시 · · · · · ·
1935년. <중앙> 발표/ <창문사>(1936년)
[감상]
김기림의 장시 <기상도>는 7부 420여 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대 문명을 총체적으로 담아보려 했다는 점에서 T. S.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아침"의 <기상도>의 1부로, 오전 시각의 바다의 항구, 국제 열차, 배 위의 모습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전의 시들과는 분명 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엿볼 수 있으나, 피상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것 이상의 시적 성취도를 거두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어휘풀이]
윤선 : 화륜선. (증)기선.
산판: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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