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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한국현대시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by 길철현 2025. 3. 24.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여흰 서름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하로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뻐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말아

삼백예순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있을테요 찬란한슬픔의 봄을

 

                                          <1934년, 문학>

 

모란 - 목단

 

후감) 모란이 목련이 아닌가 하는 억측을 하기도 했으나, 모란이 화투에 나오는 목단이다. 하지만 모란을 의식한 상태에서 직접 본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화투에 나온 것으로 볼 때 장미를 떠올릴 정도로 화려하다. 모란을 직접 보고 이 시를 읽으면 좀 더 '직정적'으로 쓸 수도 있을 듯하다.

 

해설서를 읽으면서 1) 이 시는 <문학>지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와 <영랑시집>에 실렸을 때 둘 다 제목이 없었다는 것과 2)김영랑이 집 뜰에 모란 300그루를 키웠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거기다 이 시는 영랑의 시로서는 예외적으로 연구분이 없는 단연으로 된 시라는 점도 흥미롭다.

 

김영랑의 대표작으로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에 배웠던 이 시는 그냥 좋다라고 배웠지, 자세한 분석은 듣지 못했다(아니면 듣지 않았던가?) 아니,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은 이 시가 지나치게 고평가 되었다는 말도 한 듯하다. 

 

어쨌거나 이 시는 이인복의 지적처럼 2행씩 한 묶음으로 엮이며, 전반부와 후반부가 '정교한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형식미가 뛰어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시에서는 모란이 핀 시점의 행복감 같은 것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모란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갑자기 시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리날'로 비약해 버리고 있다. 그리고, 도입부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의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3에서 10행까지는 모란이 지고 난 다음의 서러움에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의 이러한 전개가 영랑의 개인적 기질의 탓일 수도 있고, 좀 넓게 생각하자면 식민치하라는 민족적 상황과도 어느 정도는 맞물려 있을 수도 있다. 또 당대의 시적 경향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이러한 추측은 영랑 시와 당시의 시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추측 이상의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다.

 

이 시의 놀라운 부분은 마지막 행의 '찬란한슬픔'이라는 구절이다. 도입부의 '나의봄'이 모란이 지고 난 다음의 서러움, 모란의 실종, 울음 등의 우여곡절을 거친 다음 '찬란한슬픔'이라는 모순형용에 가까운 변증법적 도약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시를 살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이 시는 지나치게 애상적인 정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평가절상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양왕용 -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한국 현대시 작품론>. 문장.

(그다지 새로운 해석을 담고 있지는 않음. 기존의 해석 정리)

143) 12 행 단연. 자유시 의식. 

144) 원래 제목 없음

144) 집 뜰에 모란 300그루 키움. 

148) 찬란한 슬픔의 봄. 슬픔 자체를 극복. 

149) 체념이라기보다는 무서운 극복의지가 숨어 있음. 

---) 식민지 시인의 예술적 지향. 

 

*김현승. 한국현대시해설. 관동출판사

88) 이 시인의 모란꽃에 대한 이러한 집념은, 예술을 대상으로 하였을 땐 그것은 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이 집념이 정치에 작용하면 지조와 성실을 낳고, 민족을 위하여는 절개가 되는 것이다. 과학의 세계에 들어가면 이 집념은 위대한 발명과 발견을 낳는 모체가 될 것이다. 

 

*이인복.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구조적 분석. <한국대표시평설>. 문학세계사. 1995(개정판 2쇄)

129) 시는 사물이라 할 수 있으니 그냥 사물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안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여야만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는 그러한 존재로서의 사물이다. 

---) 시는 말이 아니라 말에서 나온 말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30) 정교한 대칭구조

 

 

<춘향>

https://blog.naver.com/jihyang112029/223110516890

 

<불지암 서정>

https://blog.naver.com/leesobia/221673735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