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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서정주2

서정주 -- 귀촉도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걸 슬픈 사연의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1943년. . 선문사. 1946. 김소월의 "접동새"가 전래 설화를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데 반해 서정주의 이 시는 촉나라의 망제 설화에서 '귀촉도'라는 말을 따오기는 했으나 그 설화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이 시는 그 배경이 모호한 대로 님과 영영 이별하고 만 화자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마지막 .. 2025. 4. 12.
서정주 -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 2023.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