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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 폭풍의 언덕 폭풍의 언덕                         기형도  이튿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간유리 같은 밤을 지났다. 그날 우리들의 언덕에는 몇 백 개 칼자국을 그으며 미친 바람이 불었다. 구부러진 핀처럼 웃으며 누이는 긴 팽이 모자를 쓰고 언덕을 넘어갔다. 어디에서 바람은 불어오는 걸까? 어머니 왜 나는 왼손잡이여요. 부엌은 거대한 한 개 스푼이다. 하루종일 문지방 위에 앉아서 지붕 위에서 가파른 예각으로 울고 있는 유지 소리를 구깃구깃 삼켜넣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아버지가 끊어뜨린 한 가닥 실정맥이야. 조용히 골동품 속으로 낙하하는 폭풍의 하오. 나는 빨랫줄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아버지의 런닝셔츠가 흙투성이가 되어 어디만큼 날아가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헤아려 보았다. 공.. 2024. 11. 26.
[내가 찾은 탁구장들] 시민생활스포츠센터[대구 수성구 미술관로 100 / 삼덕동 268-2](20241123) [방문기] 이곳은 지난 10월 20일에 있었던 '대구광역시장기'에 참석할 때 처음으로 들렀다. 관중석은 따로 없었으나 공간이 엄청나게 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날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신통치 못한 성적을 내어 아쉬웠다. 그런데, 진행을 아주 방만하게 했음에도 탁구대가 40대인가가 깔려 있어서 이른 시각에 끝났다. 이날은 '영남신학대학교총장배'에 참석했는데, 8강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내어 유니폼을 상품으로 받았다. 이날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결로가 생겨 탁구대와 바닥에 물이 떨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어떤 사람은 탁구를 치다가 물 때문에 미끄러지는 위험한 상황까지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 결로 현상은 오후가 되면서 사라졌다.  (20241020) 2024. 11. 26.
[내재율 제3집] 권혜경(86) -- 들꽃 들꽃                권혜경(86) 어둠이 산등성일 타고 내려올 무렵.겨울부터 지금까지 한이 서린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저만치들려온다. 까맣게 그을린 초동의풀피리 같은 소리가 촌부(村婦)의 구릿빛 살갗을 닮은산언덕길 흙 위에누군가의 발자취가 남겨졌던가.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가.코끝을 간지르는 남풍에무심히 떨고 있는 빛바랜 무명 치마 같은 꽃잎.길섶에 무리지어 피어있는들꽃. 지천에 뒹구는 돌덩이, 흙덩이만큼그렇게 온 산을 메우고 있건마는, 오히려우리 누나 고운 미소 같은 꽃이여.누구나 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더욱이, 애절한아름다움이여. 고이 생명이 침전해 있는 동안모든 웃음과 울음 캐어 주는영원히 시들지 않는 샘처럼생명력이 충일해 있는 이 들꽃.사랑보다 미움이 많았던 일월들이괴롭히며얼마나 많.. 2024. 11. 25.
슬픈 천사 자칭 천사인 당신주옥같은 삶의 정점인가절름 다리를 이끌고폐병쟁이 남편과 더불어떨칠 수 없던 노역의 질곡그 질곡에서 벗어나노년의 여유도 잠시지랄 맞게도 인지증이 찾아왔다 커피를 다 비우기도 전에 또 커피를 찾는단기 기억 상실은 가족을 도둑으로 의심하는 망상으로 발전하고대소변을 못 가리는 지경이 되더니급기야 몸을 일으키는 법마저 잊어버렸다 노름꾼 남편의 화투판을 뒤엎던 강단잘못한 아들을 모질게 매질하던 엄격모두 전생보다 먼 과거의 일이 되고여든다섯의 나이에죽자이 청춘이요 살자이 고생이라는터무니없는 말을 뱉어내는 철부지가 되고 말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똥구멍은 물론 코털까지도 아파,아파 아파 아파를 연신 되뇌는 당신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당신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고 싶지만아들이 최고야에서최고는 지랄이 최고야로.. 2024.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