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407 [내재율 제3집] 어머니 -- 홍순오(86) 호롱불 아래서 늘한 뜸 두 뜸 바늘을 뜨고 계셨다. 줄지어 빈 가슴으로 달려오는부엉이 울음소리한 줌 눈물을 지워 보내시고도 산맥 너머까지울려퍼질종매의 아픔을 하나도 빼지 않고알고 계셨다. 사람들은 빛을 찾아 헤매었지만어둠만 주섬주섬 주워들고 옷을 짓고 계셨다. 2024. 11. 17. [내재율 제3집] 발간사 -- 오규희 (85) 여름 내 비에 젖은 나뭇잎처럼 아스팔트에 붙어있던 세포들이 하나, 둘씩 고개들어 숨을 쉰다. 파릿한 새벽 공기가 가슴속에 파문을 만들어 온몸에 번져나가는 것은 가을을 바라는 우리 그리움의 걸신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일까? 정수리를 쪼아대는 햇빛 아래서 우리의 무기력함이 너무 처절했기 때문일까. 지리한 그림자를 끌며 밀려가는 여름의 등 뒤에서 우리는 지치고 무거운 무릎을 애써 피며 일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비틀거림 속에서도 하늘을 우러르는 나무가 되려 했고 서로 모여 숲이 되기를 원했다. 응집력을 가지기보다는 콩알들이 되려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와 육체를 알콜로 마비시켜도 정신은 먼 하늘 위에서 마주치지 못하는 구름이 되었던 아픈 기억을 더듬게 되지만, 마음의 반은 뒤춤에 숨기고 반만을 드러내는 것이 어.. 2024. 11. 17. 손세실리아 - 얼음 호수 얼음 호수 손세실리아 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중간중간 위태롭기도 했다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세상으로부터 나를완벽히 봉해 본 적 있던가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손세실리아. [기차를 놓치다]. 애지. 2006. - 얼어붙은 호수를 소재로 한 시 중 내가 아는 것은 나희덕의 '천장호에서'라는 짧은 시가 있다. 그 시가 죽음 혹은 부재의 극한 상황을 말하고 있다면, 손세실리아의 이 시는 내적 강인함을 추구하고 있다. 깜빡했는데, 이영광의 '고복 저수지'라는 시도 있다. 그 시가 기억에서 떠오르지.. 2024. 11. 10. 원동우 - 창혼唱魂 창혼唱魂 원동우 어쩔 길 없이 나무는 꽃을 밀어낸다더 갈 데 없는 가지 끝에 꽃들은 피었다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낭떠러지에 매달린 어린것들갓 태어나 어여쁠 때 지는 것이 목메어바람조차 꽃잎을 건드리지 못한다 나무 밑을 지나다 걸음을 멈춘 비구니가 꽃그늘을 올려다본다 그 얼굴 위로떨면서 자꾸만 떨면서 꽃들은 몸을 던진다잔주름이 가득한 비구니 눈가에 눈물인지독경인지 반짝이는 봄이 흘러내린다 원동우. [불교문예]. 2017 봄호. - 어린 꽃과 낙화, 또 그 아래를 지나는 늙은 비구니의 대비를 통해 봄의 한 장면을 잘 포착했다. 김소월의 '초혼'이 격정적이라면, 이 시는 나지막하게 죽음, 그것도 봄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2024. 10. 4. 이전 1 ··· 3 4 5 6 7 8 9 ··· 10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