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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22

이찬 -- 아오라지 나루 코스모스 우거진 연천(漣川) 마을엔한글 공부 소리 박넝굴보다 더 낭자하고 아오라지 나루는 새 서울의 나루여서야반 준령 오십리 길도 멀지 않았다. 나루는 기망(旣望)의 달빛이 백사를 깔고묘망(渺茫)한 금반(金盤) 우에 은장기를 두고 나룻배는 한 척인데서울 손은 천에도 또 몇몇천 기다려도 기다려도 못 건너는 나루에삼칠제의 새 소식이 새 소식을 부르니 나루지기 할아버지의 늙은 볼에도 웃음이 돌며휘연히 아오라지의 긴긴 밤도 밝어오는 것이었다.  1946년 "우리문학"에 실림.  기망(旣望) : 음력으로 매달 열엿샛날.묘망(渺茫) : 넓고 멀어서 바라보기에 아득함.금반(金盤) : 황금으로 만든 쟁반 따위. 삼칠제 : 수확한 곡식의 3할은 지주가 가지고 나머지 7할을 소작인이 가지던 제도.휘연히 : 훤한 듯하게 -.. 2025. 1. 6.
이찬 -- 동절(冬節) 하늘은 가없이 푸르고 멀고봄 아닌 하늘엔 한 개 나는 새의 가벼운 나래도 없고 눈덮인 연산이 젊은 과수처럼 옹조그리고만 앉어안타까운 날과 날을 바람은 미친 듯 오르락내리락 그 서슬에 집웅이 떨고 나무나무 황철나무도 떨고양지바른 추녀 밑 청승맞게 턱 괴인 괭이수염도 떨고 스산한 계절!말없는 나의 강은 무슨 생각에 잠기었느냐 네 좋아하는 구성진 물방아의 콧노래도 오늘엔 없고네 즐기는 재롱둥이 애기풀의 고운 춤도 오늘엔 없고 흐르고 흐른 천리 연변두팔 벌려 반기는 그 고운 꽃바위들의 기억도 다시 찾을 수 없는 꿈 오늘도 너의 음울한 주거 요요(寥寥)한 변두리엔덧없는 조석을 몰아 지나가는 세월의 허허한 공음(蛩音)만 울려드나니 아하 말이 없어도 나는 아노라고고(孤苦)한 너의 가슴 터지려는 너의 가슴 가막까치 우.. 2025. 1. 4.
박세영 -- 산제비 남국에서 왔나,북국에서 왔나,산상에도 상상봉,더 오를 수 없는 곳에 깃들인 제비. 너희야말로 자유의 화신 같고나,너희 몸을 붙들 자 누구냐,너희 몸에 아는 체할 자 누구냐,너희야말로 하늘이 네 것이요, 대지가 네 것 같구나. 녹두만한 눈알로 천하를 내려다보고,주먹만한 네 몸으로 화살같이 하늘을 꾀어마술사의 채쭉같이 가로 세로 휘도는 산꼭대기 제비야너희는 장하고나. 하로 아침 하로 낮을 허덕이고 올라와천하를 내려다보고 느끼는 나를 웃어다오,나는 차라리 너희들같이 나래라도 펴보고 싶구나,한숨에 대닫고 한숨에 솟치어더 나를 수 없이 신비한 너희같이 돼보고 싶구나. 창들를 꽂은 듯 희디흰 바위에 아침 붉은 햇발이 비칠 제 너희는 그 꼭대기에 앉어 깃을 가다듬을 것이요,산의 정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를 제,너희는 마.. 2025. 1. 3.
권 환 -- 한역(寒驛) 바다 깊은 속으로박쥐처럼 사라지다 기차는 향수를 싣고 납 같은 눈이 소리없이외로운 역을 덮다 무덤같이 고요한 대합실벤치 우에 혼자 앉아조울고 있는 늙은 할머니 왜 그리도 내 어머니 같은지?귤껍질 같은 두 볼이 젊은 역부의 외투 자락에서툭툭 떨어지는 흰 눈 한 송이 두 송이 식은 난로 우에그림을 그리고 사라진다 "자화상". 1943. - 기차가 떠나고 난 다음의 고요한 겨울 대합실의 정경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졸고 있는 할머니의 '귤껍질 같은 두 볼'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는 부분이 흥미롭다. 후일 곽재구는 '사평역에서'라는 시에서 유사한 분위기의 겨울 대합실을 좀 더 구체적이고 절절하게 그려내었다. 2025.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