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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07

탁구 시 두 편 탁구공                   서효인   내게 무엇을 받을 것인가 바라지 말고,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해, 공격과 수비에 대해, 낮과 밤에 대해, 파리와 나비에 대해 생각해 봐,  사각형의 세계는 늘, 받은 만큼 돌려준다, 독재자의 눈빛을 번득인다, 속임수를 쓴다, 모든 지나감을 아까워한다, 쉽게 탄식한다, 공을 주우러 가는 사내들, 화가 난 양이 된다,  주고받음의 문제에 대해, 작은 공에서 일어나는 회전에 대해, 사이좋게 나눠 갖는 서브의 권리에 대해, 종교인처럼 말이 많다,   저 너머의 세계로 당신의 공을 떨어뜨릴 수 있겠는지 생각해 봐, 네트마다 그려진 빨간 해골과 친절한 아침밥에 대해, 협박과 편지에 대해, 망루와 난망에 대해, 녹색의 세계는 반드시 서효인. [백 년 동안의 세계 대전.. 2024. 9. 18.
이동훈 - 몽실 탁구장 몽실 탁구장                         이동훈 동네 탁구장에몽실이를 닮은, 작은 체구에 다리를 조금 저는 아주머니가 있다.상대의 깎아치기 기술로 넘어온 공은되깎아 넘기거나 살짝 들어 넘기고강하고 빠르게 들어오는 공은힘을 죽여 넘기거나 더 세게 받아칠 줄 아는 동네 고수다.하루는 권정생 닮은, 빼빼 마른 아저씨가 탁구장에 떴다.허술해 보여도 라켓 몇 개를 지닌 진객이다. 몸 좀 풀 수 있냐는 요구에몽실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공을 받아주는데조탑동의 인자한 그분과 다르게이분은 탁구대 양쪽만 집중 공략하는 극단주의자다.이쪽으로 찌르고 저쪽으로 때리기를 반복하니불편한 다리로 한두 번 몸을 날려서까지 공을 받아주던몽실 아주머니가 공 대신 화딱지를 날렸다.-- 이렇게 몸 풀려면 혼자 푸시고요.-- 남 .. 2024. 9. 18.
김광규 - 누렁이 누렁이                  김광규 두 앞발 가지런히 모으고양쪽 귀 쫑긋 세우고못 보던 누런 토종개 한 마리포장도로 길가에 앉아 있네뒷발로 벌떡 일어서 반갑게맞이할 주인 어디로 갔나날이 어두워도 나타나지 않에혼자서 음식 쓰레기 주워 먹고자동차 지나갈 때마다꼬리 몇 번 흔드는 누렁이길바닥에 내려놓고사라진 주인 돌아오지 않네벌써 며칠째인가 온종일SUV 달려간 쪽 골똘히 바라보며슬픔에 지쳐버린 누렁이맥없이 길가에 엎드려 있는황색 유기견 한 마리 김광규. [오른손이 아픈 날]. 문지. 2016. 72. - 자기를 버린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황색 유기견의 슬픔을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 개의 슬픔이 배가 되는 것은 주인이 자신을 버렸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2024. 9. 11.
김광규 - 떨어진 조약돌 떨어진 조약돌                         김광규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들하나둘 모인 자리에 저절로돌무덤 하나 생겨났네그 위에 행인들의 소박한 염원쌓이고 쌓여 볼품없게 삐죽 솟은 돌탑 하나되었네그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은조약돌 한 개언덕길 올라갈 때 눈에 띈 그 동그란 머릿돌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길바닥에 떨어져오가는 발길에 차이고 있네길가의 돌탑 꼭대기라 해도정상에 머물기는 쉽지 않은 듯수많은 바탕돌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 널려 있는데 김광규. [오른손이 아픈 날]. 문지. 2016. 22 2024.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