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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408

김광규 - 떨어진 조약돌 떨어진 조약돌                         김광규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들하나둘 모인 자리에 저절로돌무덤 하나 생겨났네그 위에 행인들의 소박한 염원쌓이고 쌓여 볼품없게 삐죽 솟은 돌탑 하나되었네그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은조약돌 한 개언덕길 올라갈 때 눈에 띈 그 동그란 머릿돌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길바닥에 떨어져오가는 발길에 차이고 있네길가의 돌탑 꼭대기라 해도정상에 머물기는 쉽지 않은 듯수많은 바탕돌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 널려 있는데 김광규. [오른손이 아픈 날]. 문지. 2016. 22 2024. 9. 10.
김광규 - 어둡기 전에 어둡기 전에                      김광규 걸어 다녀도 시간이 넉넉했던 시절그때를 아무리 그리워해도 소용없습니다 이제는값비싼 승용차도 고속전철도 마찬가집니다직업에 상관 없이 출퇴근하는 데한두 시간씩 걸리고 때로는자동차 고치느라고 오후 내내정비센터에 죽치고 앉아 기다리기도 합니다시간의 바퀴는 보증수리도 안 되지요주말이면 식구들과 세탁물 찾아오고할인매장에 가서 장 보는 것도 큰일입니다도심에서는 차 세울 곳 찾기 힘들고주차비도 여간 비싸지 않습니다 이제는 어디서나 기다리는 시간만 자꾸 길어지고그나마 남은 시간 점점 줄어듭니다퀵보드 타고 가볍게 스쳐가는 아이들시간을 앞질러 달려가는 동안 어버이들은잠도 안 자며 맹렬한 속도로 뒤쫓아오는시간의 바퀴 피해보려고 백미러를힐끔힐끔 쳐다보며 가속페달 밟아보지.. 2024. 9. 6.
김광규 - 치매환자 돌보기 치매환자 돌보기                          김광규 어려운 세월 악착같이 견뎌내며여지껏 살아남아 병약해진 몸에지저분한 세상 찌꺼기 좀 묻었겠지요하지만 역겨운 냄새 풍긴다고귀여운 아들딸들이 코를 막고눈을 돌릴 수 있나요척박했던 그 시절의 흑백사진들 불태워버린다고지난날이 사라지나요그 고단한 어버이의 몸을 뚫고 태어나지금은 디지털 지능 시대 빛의 속도를 누리는 자손들이 스스로 올라서 있는나무가 병들어 말라죽는다고그 밑동을 잘라버릴 수 있나요맨손으로 벽을 타고 기어들어와여태까지 함께 살아온방바닥을 뚫고 마침내 땅속으로돌아가려는 못생긴 뿌리의 고집을치매 걸렸다고 짜증내면서구박할 수 있나요뽑아버릴 수 있나요 김광규. [시간의 부드러운 손]. 문지. 100-101.  -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 .. 2024. 9. 6.
김광규 - 생사 생사           김광규 방독면 쓴 방역요원들이 계사에사정없이 분무기로 소독약을 뿜어대고닭과 오리 수천 마리를 비닐백에 잡아 넣어한꺼번에 살처분한다조류독감 때문이다출입통제선바깥의 냇가에는어디서 날아왔나청둥오리들 한가롭게 무자맥질하며 놀고백로 몇 마리 한 발로 서서명상에 잠겨 있고 김광규. [시간의 부드러운 손]. 문지. 2007. 111. - 인간의 필요에 의해 수천 마리씩 사육하고, 또 각종 전염병 때문에 한꺼번에 살처분하는 현실. 그 현실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이지는 않다. 2024.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