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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호수행

팔당호 1[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하남시, 남양주시 조안면, 양평군 양서면](20220522-26) 하남시 / 광주시

by 길철현 2022. 6. 14.

[소개] 팔당호는 한강 협곡에 1974년 팔당댐의 건설로 생겨난 인공 호수로 만수면적은 36.5제곱킬로미터(3650헥타르)이다. 경기도 광주시, 남양주시, 양평군, 하남시에 걸쳐 있으며, 한강 유역의 홍수 조절 및 수도권의 상수원 역할을 한다. (계속 조사)

 

 

팔당’ 의 뜻은?

강의 양쪽 산세가 험준하고 수려하여 팔선녀가 내려와 놀던 자리라 전해진 데가 여덟 곳이 있었는데이후 그자리에 여덟 개의 당(堂)을 지어놓았다고 해서 ‘팔당(八堂)’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팔당호의 경계는 팔당댐으로부터 북한강의 청평댐 직하류, 남한강의 양평군 개군면 앙덕리, 경안천의 서하보에 이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의

경기도 광주시·남양주시·양평군·하남시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

개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한강 수계에 있는 인공호이다. 유역 면적은 2만 3800㎢이고, 만수위 때의 수면 면적은 36.5㎢이다.

형성 및 변천

서울 및 수도권의 상수원인 팔당호는 1974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와 하남시 배알미동 아래배알머리 사이의 한강 협곡에 높이 28m, 길이 575m의 팔당댐이 건설됨으로써 등장된 한강 수계 최하류의 저수지가 되었다.

현황

총 저수용량은 2억 4400만 톤으로 연간 3억 7800만㎾h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이용되고, 한강 유역의 홍수조절 및 1일 260만 톤에 이르는 수도권의 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깊은 계곡과 함께 수려한 호반을 뽐내고 있는 팔당호는 양수리 유원지를 비롯한 크고 작은 유원지가 많아 수도권의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 들어 호반에 각종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난립되고 경안천을 통해 도시화된 지역에서 발생하는 오폐수가 유입되면서 수질을 크게 오염시키고 있어 이의 대책으로 「한강수계상수원수질관리및주민지원등에관한법률」이 199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에서 정한 주요한 대책으로는 수변구역설정, 임의적 오염총량관리제, 물이용부담금제 등의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1998년 발표된 「팔당호 등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개선 종합대책」에 따르면 1단계에 법령 및 제도 정비와 물이용부담금 등 유역관리기반을 조성하고 2단계(1999∼2000)에서는 환경기초시설확충, 호소 수질관리대책의 추진 등을 시행하고, 3단게(2000∼2002)에는 초기 강우처리, 환경친화적 농업정책 등의 비점오염원 관리대책을 추진하고, 그리고 4단계(2002∼2005)에서는 지역총량관리제도를 실시하며, 한강수계 정보화사업을 완성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예산의 투여에도 불구하고 팔당호 수질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당호 [八堂湖]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남종면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

위치
경기 광주시 퇴촌면·남종면

총 저수량 2억 4400만t으로,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졌다. 서울특별시의 상수도원으로 보호받고 있어 유원지와 낚시터는 개설되어 있지 않지만, 북한강·남한강·경안천으로부터 유입되는 각종 오폐수로 인해 해마다 오염도가 높아지고 있다. 주변 일대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경관이 빼어나 팔당댐을 중심으로 경기도의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당호 [八堂湖]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탐방기: 팔당호, 다시 돌다]

 

-- 들어가는 말

 

다목적 댐의 건설로 형성된 대형 호수와 그 주변 명소를 탐방하는 것은 예전에도 흥미진진한 일이었으나, 대형 호수를 온전히 돌면서 탐방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충주호, 소양호, 안동호, 임하호, 주암호, 옥정호, 진양호, 합천호 등을 찾아 호수 둘레로 난 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마라톤의 완주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대형 호수를 완전히 돌면서 명소를 찾고 둘레길을 걷기도 한 것은 지난 5월 초(2022년) 파로호가 처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비교적 규모가 작은 탐진호의 경우에는 그보다 전(2021년 6월)에 온전히 한 바퀴를 돌았다). 지난 3년 저수지 덕후가 된 나에게 1박 2일 간의 파로호 탐방은 호수 여행에 새로운 묘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서울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의 모임이 있어서, 중간에 대구로 내려왔다 올라가는 번거로움을 피할 겸 그 사이에 국내 최대 호수인 소양호를 탐방할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차가 서울에 가까워지자 '왜 가까운 팔당호부터 시작하지 않지?'라는 의문이 떠올랐고, 그래서 탐방지를 급변경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내외 거리에 있는 팔당호는 사실 37년 전 대학교에 입학 한 다음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수십 차례는 찾았을 정도로 여러 번 간 곳이다. 그래서 이번 탐방은 한편으로는 과거와의 조우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팔당호 주변 북한강과 남한강에 자전거 도로가 강 양안으로 조성되었고, 또 지자체 마다 자기 지역을 관광 명소화하려는 노력 등으로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호수와 강을 바라보는 내 시각의 변모와 맞물려 팔당호를 도는데 4박 5일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팔당호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다목적 댐의 건설로 생긴 대형 호수들의 경계란 대체로 모호할 수밖에 없다. 팔당호도 일반적으로 팔당댐부터 경안천의 끝부분과, 양수리 일원 정도까지를 칭하는 듯하지만(만수면적이 36.5제곱킬로미터라고 하는데 이것은 또 어떤 기준에서 정한 것일까?) 나는 자의적으로 경안천의 서하보와, 북한강의 청평댐, 남한강의 이포보까지를 팔당호의 경계로 정하고 그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어딘가에서는 경안천의 서하보, 북한강의 청평댐, 남한강의 양평군 개군면 앙덕리까지를 그 경계로 정하고 있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또 걸을 수 있는 곳은 걷겠다는 생각 외에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탐방에 나선 것이 아니라 정해진 것은 없었으나, 과거의 경험들을 되새기고 또 새롭게 많은 것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낮의 햇살과 무더위가 여름철을 방불케 하여 3일 째부터는 한낮에는 좀 휴식을 취하기도 하면서 탐방을 이어나갔다. 여러 가지 일들로 여행을 마친 것이 벌써 20일 전이다. 기억도 벌써 많이 흐려졌고 여행기를 적는데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집중적으로 매달려 해나갈 생각이다. 

 

*첫째 날(0522)

 

1. 팔당호 가기 전

 

가. 서울시 방이동에서 하남시 감일동까지

 

전날 하남시(감일동 신도시)에서 탁구 모임을 가진 다음 노원구의 집까지 대리를 했다가 아침에 다시 올 생각을 하니 시간과 비용면에서 별로 이득이 될 것이 없다 싶은 생각에 부근 모텔에서 자기로 했다. 하지만 바로 근처에는 모텔이 없어서 방이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했고, 주말이라 꽤 비쌌다. 내가 묵은 곳은 이름만 호텔이었는데, 응접테이블과 침대 사이에 화장실과 욕조가 있는 정말 특이한 구조였다. 

 

교통비도 아낄 겸 또 혹시 모를 숙취운전도 예방할 겸 전날 차를 주차해 둔 곳까지 지하철 등을 이용하여 천천히 가기로 했다. 9호선 [한성백제]역에서 탄 다음 [둔촌오륜]역에서 내렸다. 버스를 무엇을 타야할지 몰라 내비에 의존해서 걸어가다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다른 곳으로 빠져 상당히 둘러서 가게 되고 말았다. 서울이 워낙 넓어서 시 외곽인 이 지역은 낯설고 또 낯설어서 걷는 재미가 있었다.

동북중학교
서하남IC입구 사거리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100번)
무인 운영 시간. 이곳에 들어가 캔커피를 하나 샀다. 혹시 못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약간 하면서.
감일금강 Central Park
전날 차를 주차해 둔 곳

나. 고골지지(배다리낚시터), 춘궁저수지(고골낚시터), 홍중저수지(중대물빛공원)

차를 타고 이제 본격적으로 탐방에 나설 때였다. 먼저 내비에서 본 [고골지지]를 찾았다. [배다리낚시터]가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휴일을 맞아 낚시터를 찾은 강태공들로 북적거렸고, 저수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좌대가 많이 놓여 있었다.

그 다음 팔당호를 본격적으로 탐방하기 전에 막내동생의 시댁이 있어서 지나는 길에 알게 된 [홍중저수지](중대물빛공원)을 다시 들르기로 했다. 서하남로를 타고 달리자 [춘궁저수지](고골낚시터)가 나와 거기도 잠시 들러보았다. 

이 저수지 안쪽 [수도권제1순환도로] 건너편에는 보물로 지정된 동사지 3층, 5층 석탑이 있었다.

그 다음 43번 국도를 타고 광주시로 들어선 뒤, 우회전하여 389번 지방도를 타고 좀 올라가니 [홍중저수지]였다. 광주시에서는 이곳을 [중대물빛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도록 하고 있었으며, 이곳에도 휴일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거닐거나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뭄으로 물이 많이 준 것이 안타까웠다.

[이 세 저수지에 대해서는 따로 좀 더 자세하게 적어 두었다]

 

다. 광주 시내

 

중대물빛공원에서 나와 점심도 먹을겸 광주(廣州) 시내를 좀 구경하기로 했다. 광주시와의 인연은 막내여동생의 시댁이 이곳이라는 것이 크지만, 내 기억 속에 각인된 것은 광주군이 광주시로 승격(2001년 3월 21일)하기 직전인 2001년 2월 15일, 수도권에 삼십 년만의 대설이 내린 날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 전날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온 세상이 흰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길을 떠났는데, 서울 외곽까지 지하철을 타고 온 다음 무작정 걷기도 하고, 또 체인을 감고 도로로 나온 차들을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저녁 무렵에 광주 읍내까지 왔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편이 있는가 알아보았으나 전혀 운행을 하지 않았다. 그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광주 시내를 좀 돌아보고 싶었던 것인데, 지난 20년 사이에 광주는 엄청나게 변했고 인구가 대폭 증가했다(2022년 현재 40만을 넘어섰다). 중앙로 어디 쯤에 있었던 듯한 예전의 [시외버스터미널]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많이 변해 버린 곳에서 과거를 더듬는 것은 무의미한 듯해서 부근을 관광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휴일인데도 주차할 곳을 찾기가 힘들어 차를 몰고 상당 시간 돌아야 했다. 

구제특화거리가 생길 정도라면 시의 규모가 일정 정도 이상이어야 한다.

좀 높은 곳에서 광주 시내를 조망할 겸해서 [경안근린공원]에 올라갔다. 행정구역 표석을 모아둔 것이 이채로웠다.

이 공원은 시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배도 출출하고 해서 [장수 본가 해장국]으로 들어가, 내장탕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꽤 넓은 식당인데도 손님이 많아 빈 자리도 거의 없었고, 내 뒤에 들어온 손님을 위해 식사를 마치자 말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시간의 흔적
교회를 카페로 개조했다.

광주는 내 기억 속의 소읍이 아니라 상당히 큰 도시로 변모해 있었다. 광주대로에서 경안천로로 우회전해야 하는데 직진해서 본의 아니게 광주 시내를 좀 더 보게 되었다. 

절대로 기권하지 않을 분. 선거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