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의 내 꿈은 다소 막연하기는 하지만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팝송에 빠져 들어서, 7,80년대에 나름대로 탄탄하게 팝송 전문 잡지로 자리를 잡았던 [월간팝송]같은 잡지사의 기자나 팝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대학교에 입학에서 영화 시사권을 얻으러 [월간팝송]을 찾아갔다가 그 규모가 너무나 영세한 것에 놀라 큰 비전이 없다고 생각을 했던 듯하다). 나름 부지런히 소설과 시를 읽고 습작을 해보기도 했으나, 남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꿈은 꿈으로 머물고 말았고, 그보다는 삶이 축적될 수록 내 안의 갈등들이 삶과 불화를 일으키고, 가족이나 친척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해 이 삶을 어떻게 지혜롭게 건너갈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굳은 결단을 하고 이 삶에게 안녕을 고할 것인가가 더욱 시급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다가, 굳이 시나 소설을 쓰지는 않더라도 내 삶의 일들을 적는 것은 잘 하든 잘 못하든 간에 일단 내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보는 행위라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고, 그 이야기가 최소한 몇 사람에게나마(이 부분은 어쩌면 영일 수도 있구나) 조그만 흥미라도 불러일으킨다면, 그게 아니라면 시간을 때우는 데라도 도움이 된다면 완전 헛짓거리는 아닐 것이다(헛짓이라 한들 어쩔 것인가? 헛짓거리가 아닌 것은 또 어디 있는가? 저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 . .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는 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요즈음이 어떤 시대인가? 서사의 백가쟁명의 시대가 아닌가? 되는 이야기이든 안 되는 이야기이든 온갖 이야기들이, 첨단 매체의 힘을 빌어 온갖 말과 이미지들을 배설하는 시대가 아닌가? 차라리 침묵이 미덕처럼 보이긴 하지만, 인간은 침묵하는 동물이라기보다는 말로 짖어대는 동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하게 되었고, 그런 이야기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써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정작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의 내밀하고 깊은 차원의 삶을 타인에게 까발린다는 것--내 스스로도 감추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웬만한 용기로는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검열에 걸리지 않는 소소한 일상들만이 글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바꿔 말해 우리가 어떤 형식으로 어떤 소재의 글을 쓴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야기이고(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꿈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인간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고 그렇다면 아무리 그 이야기가 독자와 동떨어져 있는 그런 것이라고 할 지라도 인간으로서의 공통성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가 오히려 약간 변주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가 좋을 듯도 하다.
깊고 내밀한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글을 쓴다는 행위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과는 반대로 지적인 노력과 시간의 투자가 필요한 작업이라 직업 작가가 아니라면 경제성의 측면에서는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고 즐겁다면 누가 뭐래도 할 것이다. 며칠 전 대구에 내려갔다가 시내 한 복판에서 미친 듯이 혼자 관절을 신나게 꺾으면서 아마도 요즈음 유행하는 춤을 추고 있는 젊은 여자(그녀의 정신상태가 좀 의심스럽기는 했다)를 보았다.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럴 수 있는 삶, 뭔가에 몰두할 수 있는 삶이 우리를 그나마 이 세상의 끈을 잡게 해주는 것 아닌가? 어쨌거나 가족사나 연애사 같은 깊고 내밀한 차원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짧은 여행기 같은 가벼운 이야기들 중에서도 어떤 것은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2001년도에 홀로 7박 9일 동안 자동차로 전국일주를 하고 그 중간에 무박 이일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일이다.
이 글은 전국일주 전체를 적어야 할지, 아니면 천왕봉에 오른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서 적어야 할지 그것부터 결정이 안 되고, 가족사나 실연으로 인한 쓰라림 등 당시의 상황 설명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 이런 부분이 갈피가 잘 잡히지가 않았다. 어쨌거나 입산 금지 기간에 산에 올랐다가 잠 잘 곳도 찾지 못하고 중간에 플래쉬도 나가 버려 오로지 녹지 않고 쌓여 있는 눈빛에 의존하며 벽소령에서 천왕봉까지 어둠과 적막을 친구 삼아 밤새도록 걸아가 일출을 목도한 사건은 무모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 몸에 굳게 각인되었다. 이 이야기를 글로 쓰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콘래드 소설의 말로처럼 사람들에게 술자리 등에서는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글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2001년의 전국일주와 함께 쉰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혼자 한 해외 여행이자, 첫 유럽 여행이었던(그리고 아직까지는 마지막 여행인) 2016년 1월 하순에서 2월 초까지 2주간의 영국 여행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정도로 잊지 못할 경험들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이 여행을 다녀온 후 한 동안 나는 여행 작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여행에 "황홀한 고독"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있는데, 여행을 하면서 저녁에는 그 날 그 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해 나갔고, 그것이 80페이지에 육박하기 때문에 일차적인 자료는 그 때 찍은 사진들과 함께 풍부한 셈이다. 하지만 이 여행기를 쓰려는 몇 번의 시도 또한 그 방대함 때문인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논문 마감 기한이 한 발 한 발 다가 오고 있어서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고 논문에 몰두하려 하는데, 주변 여건이 수월치만은 않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허약해지셔서, 어머니가 어릴 때 우리 자식들을 돌보았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어머니를 돌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 이야기가 필요한가? 글을 좀 정리하자.)
(170722)
[콘래드의 작품들을 정신분석적으로 풀어보는 것이 내 논문의 큰 주제인데, 콘래드의 적지 않은 작품들을 다 읽었고, 또 몇 번씩 읽은 작품들도 있지만, 정신분석 자체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작품을 좀 더 심도 있게 접근하는 노력의 부족 - 관련 논문들을 많이 읽어야 할 터인데 콘래드의 논문을 정신분석적 견지에서 접근한 논문들이 많지는 않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사 과정을 마친 후, 논문을 쓰는 훈련을 하지 않은 것 등이 겹쳐져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렇긴 하지만 마침 방학과 함께 논문에 몰두할 시간적 여유도 확보 되었고 요 며칠 무더운 날씨로 에어컨이 잘 나오는 동네 도서관에서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에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생각들이 꿰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작년 1월 하순의 2주일 간의 영국 여행은 나의 50년 생애에서 가장 이채로웠던 체험들 중의 하나이고, 그래서 그 경험을 글로 제대로 적어보고 싶은 욕망이 이따금씩 솟아 오르는데, 너무나도 큰 작업이 될 듯하여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당시 여행을 하면서 저녁 시간에는 대체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노트북에다 부지런히 기록해 여행이 끝났을 때는 8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채워졌다. 이 글에서는 여행 4일차, 그러니까 1월 25일의 일, 그 중에서도 콘래드의 묘를 찾으러 갔을 때의 일을 기억이 닿는 대로 자세하게 적어볼까 한다(그 당시의 경험 자체가 내 생각에는 흥미로운 것이기도 하고, 또 이 글을 써나가면서 콘래드를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면 논문을 쓰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면서).
오십이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혼자 하는 외국 여행이었기에 심리적으로 많이 들떠 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또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고 영어도 어느 정도 되니까 문화적 차이를 그렇게 많이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부딪혀 본 영국은 많은 것이 너무나도 낯설었고, 배우고 알아야 할 것 투성이었다. 콘래드의 묘를 찾아가는 이 날의 여정에도 여러 복병이 숨어 있었다.]
(2에 계속)
[콘래드를 찾아서, 를 쓰는 것은 일단은 서울로 다시 올라간 다음에 생각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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