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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페이퍼

브라이언 프리엘의 [몰리 스위니] (Brian Friel's Molly Sweeney)

by 길철현 2016. 3. 22.

Brian Friel의 Molly Sweeney


1. 플롯


<1막>

  몰리(Molly)는 생후 10개월부터 시력을 잃고 40년간을 맹인으로 살아왔다. 판사인 그녀의 아버지는 웬일인지 그녀를 맹인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을 시켰으며, 그녀의 어머니도 정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님은 현재는 돌아가신 지가 꽤 오래 되었다. 몰리는 맹인이긴 하지만 친구가 운영하는 헬스클럽에서 안마사로 일하면서 별다른 사건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정상인들이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즐거움, 촉각이나 청각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면도 있었다(특히 그녀는 수영에서 커다란 기쁨을 얻었다).

  그런 그녀에게 프랭크(Frank)라는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 헬스클럽에 왔다가 우연히 그녀를 만나고는 그녀가 장님이라는 사실에 걷잡을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는 벌(bees)과 고래 보호, 이란 염소 기르기 등 특이하고 신기한 것에 대해 억제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사나이였다. 그녀와 결혼한 후 프랭크는 눈에 대해 갖가지 연구를 하면서 그녀의 눈을 뜨게 하려고 백방으로 애를 쓰다가 예전에 아주 뛰어난 안과의사였던 라이스(Rice)를 만나게 된다. 프랭크는 몰리의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 몰리를 수술대에 보내면서도 “아무것도 잃어버릴 것이 없다”라고 되뇐다.

  라이스는 한 때 아주 유능하고 촉망받는 안과의사였으나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동료와 함께 떠나 버리자 한 동안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밸리베그(Balleybeg)라는 조그마한 도시에서 의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몰리가 그녀의 세계에서 벗어날 때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의사로서의 자신의 허영심, 자신의 예전의 명예를 찾으려는 욕심 때문에 그녀를 수술로 이끈다. 몰리도 자신의 위험을 잘 알고 있지만 새로운 세계를 접해 보고자 하는 욕구에 용기를 내어 남편의 말을 따른다.


<2막>

  몰리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몰리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짧은 기간동안 그녀는 시각의 세계가 주는 즐거움에 도취되어 기쁨을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나 그녀의 시력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았을 때는 완전하지 않았고, 수술 뒤에 이어지는 끝없는 시험들, 라이스 박사의 시험, 그리고 오코너(O'Conner) 부부의 심리 시험, 거기다 남편 프랭크의 시험 등은 그녀를 탈진하게 만들었고, 또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데 따른 충격이 그녀를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애정을 가져왔던 아버지가 사실은 돈이 아까워 자신을 맹인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또 아버지가 자신을 비유했던 네모필라라는 꽃이 실지로는 그다지 예쁘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다. 전체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나 그 충격이 너무 커서 갈피를 못 잡게 되는 것이다.

  이후 그녀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그녀는 사물을 보면서도 자신이 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는 처음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 와중에 그녀는 직장도 잃게 되고, 남편 프랭크는 몰리에 대해 가졌던 열정이 식어서인지, 그녀의 정신적 공허 상태를 견디지 못해서인지 에티오피아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라이스 박사도 그녀의 이러한 상태에 대해서 전혀 손을 쓰지 못한다. 결국 몰리는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정신 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마는 데, 그녀는 자신이 시력을 회복했을 때 본 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단순히 상상인지 의문을 갖게 되고, 또 나중에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 구분하려는 시도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라이스 박사는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몰리를 망쳐 놓았다는 걸 시인하고는 의사직을 사임하고, 몰리는 시각의 세계도 비시각의 세계도 아닌 새로운 세계,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호흡하는 다른 세계 속에 있게 된다.


2.등장 인물


a)Molly Sweeney

  라이스 박사는 몰리를 용기있는 여성(courageous woman)이라고 언급하는 경우가 몇 번 있는데 이 말이 그녀의 성격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한다. 사실 그녀는 프랭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맹인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세계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별다른 불행감없이 지낸다. 그런 그녀의 생애에 프랭크가 등장하게 되고, 또 그의 고집으로 그녀는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수술에 응하게 된다. 친구들과 자신과의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독특한 양식의 끈이 만일 시력을 회복하게 되면 사라지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그녀는 떨고, 또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얻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p23).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로부터의 추방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당당하게 맞이하려 한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수술 받는 날 아침 병원으로 들어오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인데도, 몸을 잔뜩 웅크린 남편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지팡이도 없이, 또 남편의 팔을 잡지도 않고 활기차게 걸어왔던 것이다(p33). 그러나, 그녀는 잠시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에서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우려대로 원래 속해 있던 세계로부터는 추방되고, 또 새로운 세계(시각의 세계?)에 속하지도 못하는 경계선 상에서 머무는 불안정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정신 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마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의 기만성, 어머니의 고통,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비시각의 세계?)의 협소성 등을 깨닫고는 그녀는 제3의 세계를 창조하려 애쓰는 것이다.

  극의 앞부분에 실린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녀는 용기 있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지만, 그 강렬한 빛을 견디지 못하고 파멸로 치닫고 만다. 그녀의 경우와 반대되는 경우, 그러니까 정상인으로 살다가 맹인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이를테면 이청준의 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에 나오는 안요한의 경우) 몰리가 겪게 되는 충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b)Frank Sweeney

  프랭크는 이 극에서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 자신의 기묘한 열정만을 좇아 다니는 인물, 다시 말해 자신의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가 타인이나,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몰리가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그녀와 결혼한지가 2년이 넘었음에도, 그녀를 내버려두고 자신의 새로운 열정의 대상인 에티오피아로 떠난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는 나중에 몰리에게 편지를 보내는 데도 편지 내용은 온통 에티오피아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이러한 점은 몰리의 친구인 리타(Rita)의 지적, 즉 몰리도 그의 벌, 고래, 이란 염소로 이어지는 일련의 열정의 대상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p32)는 말에서 잘 나타난다.

  그렇긴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에 그의 악의가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몰리의 정신적인 불안정 상태에 대해서, 그는 그녀의 심리치료사인 진 오코너(Jean O'Conner)의 글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말은 동시에 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즉 인간의 감정의 상태는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지며, 그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말(p50)은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그의 상태이기도 한 것이다.

  라이스 박사가 이 두 사람을 보았을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라고 생각하는 데, 이때 이 부부의 파멸은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몰리를 수술대로 보내면서도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라고 외치는 프랭크의 모습(p6)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살아가는, 다시 말해 다른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의 한 전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c)Dr. Rice

  젊은 시절 유능한 안과의사였던 라이스 박사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물론 그녀의 아내인 마리아(Maria)가 동료 의사인 로저 블룸스타인(Roger Bloomstein)을 따라 떠나 버린 사건이다. 그 전에 블룸스타인은 라이스의 아내인 마리아가 미인이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인간(p56)이라고 충고한다. 이 때의 충격으로 그는 한 때 볼리비아에서 노동자로 일하기도 하고, 술집을 경영하기도 하다가, 현재는 아일랜드의 조그만 도시에서 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본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눈이 진실에 도달하는 올바른 도구인가를 묻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라이스 박사는 젊은 날의 뼈아픈 경험으로 자신의 미망을 어느 정도 자각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처음에는 몰리를 수술하더라도 그녀가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프랭크의 말을 따르는 듯 하다가도, 결국에는 그녀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이 무엇인가를 인지하게 된다(p34).

  그럼에도 그가 몰리를 수술대로 이끄는 이유는 자신의 옛날의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욕구였다. 그는 몰리를 처음 본 순간에 전처인 마리아를 떠올리면서 몰리를 과거의 환상 속의 생활(fantasy life)로 다시 뛰어들게 해 줄 매개체로 보았던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마리아가 그를 떠난 후 그는 거의 8년간을 암흑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는 데 몰리는 자신을 예전의 위치로 돌려줄 인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위험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성공적인 수술이 가져다 줄 반대급부 때문에 후자를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그는 몰리의 행복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성공적인 수술을 원하고 있었고, 나아가서 그는 몰리의 파멸을 불러올 지도 모를 수술의 위험을 눈감아 버린 것이다.

  결국 의사직을 그만두고 파멸된 몰리의 모습을 본 뒤 밸리베그를 떠나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인 동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이 그녀를 파멸시켰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몰리가 짧은 순간이나마 사람들이 “나무처럼 걷는 모습”을 보고, 그 순간 그녀가 본 것을 우리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했을 거(p66)라는 부분은 이 작품의 주제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3.기법

  먼저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극이 아무런 무대 장치 없이 등장 인물들의 독백으로만 끝까지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 점은 베케트의 극 Play와 유사하다. 그 극에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은 유골단지로 추측되는 곳에서 자신만의 대화를 내뱉고 있는 데, 이 극의 등장 인물들 간에도 교류는 전혀 보여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극 중 인물들의 단절감을 보여주려는 측면도 있지만, 등장 인물들의 서로 다른 관점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채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작가는 이 사건을 일반적인 기법으로 제시하는 경우, 각 등장 인물들이 갖고 있는 관점을 전달하기가 미흡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각 등장 인물들을 동등한 무게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Play에서처럼 독백 양식을 채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몰리가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하고, 다시 시력을 잃고 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재현했을 경우에 관객은 몰리의 입장은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겠지만, 상대적으로 프랭크나 라이스 박사의 관점은 중요성이 덜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작가는 생생한 재현이라는 일반적인 기법 대신에 세 명의 독백자를 등장시키는 방법을 통해 다양한 관점과 이 극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미묘함을 관객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제시하려 애쓰고 있는 듯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극의 언어는 베케트나 핀터의 극에서 보이는 부조리한 면이 없다. 이 점 또한 이 극의 특징 중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등장 인물들은 서로 단절된 상태에서 독백만을 내뱉고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관객은 작품의 전체적인 얼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극의 전체를 놓고 볼 때, 앞에 제시된 단서들이 뒤에 가서 효과를 발하는 아주 탄탄한 구성을 가진(전통적인 의미에서) 작품이라는 글 알 수 있다. 프리엘이 단편소설 작가이기도 하다는 전기적인 사실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사실 몇 부분만 고치면 소설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소설적인 면도 강하게 드러난다.


4.주제 및 단평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이런 가정을 한 번 해보자. 만약 맹인들만 사는 마을이 있다고 하자. 그 마을은 높은 산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외부인들이 들어온 적이 없고, 또 이 마을 사람들은 맹인이니까 당연히 마을을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 어떤 사람이 산에서 조난을 당하여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다면 과연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이 마을 사람들은 본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를 것이다. 조난 당해 들어오게 된 사람이 눈으로 보고 하는 말들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40년간을 맹인으로서 살아온 몰리의 경우도 주변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이 마을 사람과 같은 처지라 할 수 있다. 그녀는 그 비시각의 세계 내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계발시켜 왔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시각의 세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engram(기억의 자취)’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 그녀에게 수술을 한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프랭크가 몰리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몰리가 프랭크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몰리는 이 프랭크의 세계를 경험하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프랭크의 강요에 의한 것이건,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은 그녀 자신의 욕구이건, 아니면 자신의 명예를 되찾으려는 라이스 박사의 욕심이건 간에 이 새로운 세계의 경험은 실지로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그녀에게 준다. 그녀가 일시적인 기쁨의 순간을 지나 절망 상태를 보이는 것은 그 충격을 그녀가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직접 말한 것처럼 그녀로서는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없다. 나무를 뿌리 채 뽑아 딴 곳에 옮겨 버렸다면 다시 원래 있는 곳에 되심는다고 해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의 환상 속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 작품에서 읽을 수 있고, 또 보고 듣고 느끼면서도 실지로는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도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라이스 박사처럼 자신의 허영심을 위해 다른 사람의 위험을 눈감아버리는 그런 모습도 보인다. 그렇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 앞에 선 인간의 허약성이 아닐까? 우린 때로 너무 강한 빛에 눈이 먼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작품에서도 몰리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자기가 살아왔던 세계가 실은 미망의 세계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 충격으로 걷잡을 수 없는 절망에 빠져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각의 세계도 비시각의 세계도 아닌 제3의 새로운 세계를 고안해 내려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모습은 양쪽 세계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몰리의 자구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체적으로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이 작품은 희곡이라기보다는 소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그렇지만 그러한 장르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프리엘은 인간이 안고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독창적인 기법과 언어로써 미묘하게 제시하고 있다.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