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의미를 잃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어져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했으나 겨울 추위가 물러가고, 햇살에 따스함이 실려 봄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자 내 몸에도 다시 피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나의 애마를 몰고 이곳저곳을 떠돌다, 멀리 욕지도까지 왔다.
전날 정말 오랜만에 과음을 해서(오후 네 시부터 밤 열 시 반까지 두 개의 모임에서 계속 술을 마셨다)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으나 일찍 눈이 떠져 대구에서 통영으로 차를 몰았다(숙취운전이 다소 걱정되긴 했지만). 욕지도로 가는 배편은 통영항여객선터미널과 삼덕항, 중화항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통영항여객선터미널과 삼덕항에서 모두 11시에 출발하는 배편이 있었는데, 통영에서 출발하는 배편은 중간에 기착지가 있어서 운항 시간이 1시간 반이나 걸렸다(삼덕항 50분). 아침 식사를 안 하고 집에서 나와 시간적 여유도 좀 있고 해서 통영에서 아점을 먹고 배를 타기로 했다. 2주 전 한산도로 갈 때 통영항여객선터미널 인근에 있는 [해맑은 생선구이]에서 미나리를 넣은 참복국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만 육 천원으로 좀 가격이 있긴 했지만 씹히는 맛이 부드러운 복어살과 미나리의 상큼한 향내가 입맛을 돋웠다) 일단 통영항여객선터미널로 행했다. 9시 50분에 식당 옆으로 지나면서 보았더니 10시에 오픈한다고 되어 있었다. 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터미널 내 화장실을 이용한 뒤 매표소를 둘러 보았더니 풍랑주의보로 한산도를 제외한 모든 배편의 운항이 중단된 상태였다. 허탈함과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바람이 좀 강하다는 생각은 했으나 연안의 배편이 중단될 정도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럴 수가. 갑자기 붕 뜬듯한 느낌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단은 식사를 하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을 가다듬기로 했다. 지난번에 먹었던 맛과는 좀 다른 듯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맛있게 복국을 먹고 나와 차로 향했다. 어디로 가지? 차 안에서 잠이라도 좀 잘까? 하다가, 일단 삼덕항 쪽으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통영항에서 배가 출발하지 않으니 삼덕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어서 일단 차를 미륵도로 몰았다. 산양일주로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데 강풍이 불어와 나뭇잎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일말의 희망마저 버려야 했다. 그런데, 삼덕항에 도착하니 웬걸 욕지도 행 배가 아주 정상적으로 출항하고 있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내 나름의 추론으로는 통영항에서 배가 출항하지 않은 것은 바람의 영향뿐만 아니라 승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 듯했다.
욕지도를 찾은 주 목적은 등산로를 따라 걷는 것이었지만 섬의 구석구석도 돌아다 볼 예정이었으므로 차를 배에 실는 비용이 꽤 비싸긴 했으나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차량을 인도하는 분들이 큰소리로 차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는데, 후방카메라를 보면서 후진하는데 익숙해진 나에게 자꾸만 뒤를 보면서 운전을 하라고 요구해 짜증이 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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