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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장석남 - 소나기

by 길철현 2023. 4. 19.

남천(南天)에서

천둥소리 하늘을 깨치는가 싶더니

머위밭을 한꺼번에 훑는

무수한 초조함들

처럼

이제 어디에라도

닿을 때가 되었는데

되었는데

소나기 지나가며

외딴 어느 집 처마 밑에 품어 준

열서넛 남짓

나일론 옷 다 젖어 좁은 등허리 뼈 비쳐 나는

소년, 처연한 머리카락

서 있는 곳

그 토란잎 같은 눈빛이 가 닿는 데

그 표정 그 눈빛이 자꾸만 가는 데

그런 데에 닿을 때 되었는데,......,

천둥이 하늘을 깨쳐 보여 준 그곳들을

영혼이라고 하면 안 되나

가깝고 가까워라

그 먼 곳

이 땅에 팍팍

이마를 두드리다 이내

제 흔적 거두어

돌아간

오후 한때

소나기 행자(行者)들

쫓아간

내 영혼

겨울 어느 날

눈 오시는 날

다시 보리라

빈 대궁들과 함께 서서

구경꾼처럼

구경꾼꾼럼

눈에 담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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