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시 및 감상/기형도

기형도 -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by 길철현 2023. 5. 17.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기타 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
[이영광 시인 해설] 기형도에게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네 차례 변주해낸 특이한 작시의 이력이 있다. 사랑의 시작과 끝, 또는 사랑의 실패와 좌절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작업의 세 번째 매듭에 해당하는 것이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다. <그 집 앞>의 파토스는 <바람은 그대 쪽으로>라는 어두운 세레나데의 시간을 거쳐 이 시의 "슬픔과 격정"에 이른다.
사랑의 상흔이자 잔여 감정일 이것은 "낡은 악기"라는 상관물을 통해 기이한 착란적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두 번째 문장과 주어 하나가 빠진 세 번째 문장은 "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때 나의 ~해주던 알 수~'"로 읽어야 할까. 그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오래 전부터 사용하지 않은 "그 기타"가 화자를 상념의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주었을 테니까.
이것은 소리 없는 악기와 하나가 되어 행하는, 또는 노래의 기억에 의지해 행하는 작곡이나 연주를 비유한 문장 같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일"이 된다. 지금 다시,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는 화자에게 아름다운 기타음이 들려온다. 알 수 없는 현상에 접해 화자는 "경악하"지만, 이것은 물론 짧고 약한 반응에 그치고 만다. 아마도 그의 흐릿한 감각을 제압하는 실패한 사랑의 "힘센 기억들" 때문에.
기타음이 사라지자 그는 "양초"를 꺼내 불을 켠다. 이 연작의 마지막 매듭인 <빈 집>의 한 구절,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화자는 무언가를 종이에 적으려 하는 와중에, 제 슬픔과 격정이 웅크린 줄 끊어진 악기의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즉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그걸 강박적으로 되풀이한다.
착란이 불러낸 없는 음악, 없는 희망에 "몸의 전부"를 맡겨야 하는 사랑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의 앞에 놓인 오래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아마도 "흰 종이"도 눈앞에 없는 "오선지"도 아니고, 불가능한 사랑의 덫에 걸린 저 자신의 영혼을 꺼내 펼쳐놓은 것 아닐지. 발설되기도 전에 끝난 그의 연정은 상처와 멍이 엉킨 푸른색일 것 같다.
켜켜이 쌓인 먼지로도 지우지 못하는 이 멍 빛은 기형도의 또 다른 한 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를 떠올리게 한다. 그게 실연이든 운명의식이든, 그를 가둔 내면의 병실에서 저렇게 문 열고 나오려던 순간에 그는 쓰러졌던 것 같다. 먼지가 희망이 되는 일은 왜 일어나지 못했을까.
 
 
 
 

'한국시 및 감상 > 기형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형도 - 폭풍의 언덕  (0) 2024.11.26
기형도 -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0) 202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