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통이 찾아와 나더러 쉬라고 했던가? 엄마 간병도 이날 저녁까지는 둘째 동생이 하기로 해서, 나는 가볍게 부산에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연휴라 차가 막힐 수도 있고 또 운전의 피로에서도 벗어나고자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역으로 가는 길에 임시로 책을 보관해 두기로 한 지인의 집으로 가서 복사해 둔 열쇠를 체크해 보았는데 잘 작동이 되었다. 몇 년 전에 복사를 해두고는 잊고 있다가 이번에 우연찮게 다시 찾았다.
골목에 차를 주차해 두고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역의 자동발매기에서 승차권을 구입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잠시 후 분실하고 말았다. 시간과 좌석번호는 기억이 났으나, 객차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출발 시간까지는 좀 여유가 있어서 일단 아침 식사를 하면서 전화로 문의를 해보니 창구로 가서 재구입한 뒤, 또 객실에서 승무원에게 확인을 받고, 종착역에서 환불을 받으라고 했다. 창구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듯했으나 5분이 걸리지 않아 승차권을 재구입할 수 있었다. 승차권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시간과 객차 번호, 좌석 번호까지 알고 있으면 사실 승차권이 없어도 요즈음엔 별 문제가 없는데.
부산까지 50분이 걸려 고속열차(내가 탄 기차는 SRT였다) 치고는 늦다고 생각했는데, 경주까지 20분이 안 걸리는 걸 보고는 역시 빠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부산행의 주목적지는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었다. 부산역 근처가 아닌가 했는데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3킬로 가량 떨어져 있었다. 부산의 거리도 즐기고 경직된 허리도 풀어줄 겸 걸어가보기로 했다. 일단 역 앞에 자리한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신발원 소개] 신발원은 60년 이상 운영되고 있는 중국식 빵과 만두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로, 차이나타운의 대표적인 중국식 만두 전문 음식점이다. 상호인 ‘신발원(新發園)’은 ‘새롭게 늘 번창하는 가게’라는 의미이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상해 거리, 차이나타운 소개] 개항기 중국 영사관이 있던 장소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중국인 밀집 지역으로 조성되었다. 1884년 청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청국 영사관이 설치되었고, 청국 전관(專管) 조계지(租界地)[개항 도시에 치외 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정해진 외국인 거주지]가 설치되면서 그 주위로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점포[상해로부터 가져온 각종 비단과 포목, 꽃신, 거울, 화장품 등을 판매]와 집이 늘어나게 되어 청관 거리로 불렸다.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청국이 패하며 중국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여 사라졌으나, 1898년 이후 영사관의 재개설로 거류민이 늘어나며 중국인 거주 지역이 되었다.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군이 들어오며 미군을 상대로 한 유흥 주점이 늘어나 텍사스 거리로 불리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러시아와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부산항을 통하여 들어오는 러시아 선원들과 화물선을 타고 들어온 러시아 보따리상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며, 러시아 인을 대상으로 한 유흥 주점과 보따리상을 대상으로 한 점포가 늘어나며 러시아 거리로 불리기도 했다. 1993년 부산과 상하이[上海] 시가 자매결연을 맺으며 188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화교 집단 거주지였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상해 거리로 명칭을 정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
소변을 계속 참고 있었는데 개방화장실 표지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국제시장 내에 있는 이 화장실은 주변의 레트로 감성을 따라 뒷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보수동 책방 골목]
목적지에 드디어 도착. 하지만 추석을 맞아 책방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우리글방"만 문을 열었다. 외국인이 많았고 책값이 상당히 비싸서 3권만 골랐다(좀 더 자세한 내용은 '헌책방을 찾다'-"우리글방" 볼 것).
[소개] 부산 국제시장 입구 대청로사거리 건너편에서 보수동 쪽으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에 책방들이 밀집되어 있는데 이곳을 보수동책방골목이라 한다. 국내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헌책방 골목으로, 부산의 명물거리로 꼽힌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 씨 부부가 보수동사거리 입구 골목안 목조건물 처마 밑에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으로 노점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보수동책방골목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 많은 피난민들은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고, 부산소재 학교는 물론 피난 온 학교까지 구덕산 자락의 보수동 뒷산에서 노천교실·천막교실 등을 열어 수업을 하였다. 이에 보수동 골목길은 수많은 학생들의 통학로로 붐비게 되었다. 다른 피난민들이 가세하여 노점과 가건물에 책방을 하나둘 열어 책방골목이 형성되었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들이 자신의 책을 내다 팔고, 헌책을 구입하며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신학기가 되면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때때로 희귀본이나 값진 개인소장 고서도 흘러들어와 지식인 수집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성기는 1960~1970년대로, 당시 약 70개의 책방이 있었다 한다. 2019년 현재에도 약 200m의 좁은 골목 구석구석에 약 38개의 책방이 오밀조밀 붙어 영업을 하고 있다. 초·중·고 참고서 및 교과서, 아동도서와 소설류, 사전류·고서적·만화·잡지·외국도서·실용도서 등 모든 종류의 책을 취급하며 헌책은 실가격의 40~70%까지, 새책도 10~20% 정도 싸게 살 수 있으며, 헌책을 팔 수도 있다.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는 2005년부터 해마다 9~10월에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를 열고,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수동책방골목 [寶水洞冊房―]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책방 골목의 서점들이 문을 열지 않은 관계로 대구로 돌아오는 열차(4시 23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용두산 공원을 들렀다가 오기로 했다. 가는 길목인 국제 시장에도 들러 탁구용품을 넣을 큰 배낭도 하나 샀다(3만 원).
용두산길 중앙성당을 지나 용두산공원으로 들어섰다. 용두산 공원은 1990년 대학교 수학여행 때 한 번 들르고 그 이후로는 계속 패스했다.
[부산타워] 별로 특별한 것이 있을 듯하지는 않았지만 기념으로 타워에 올라가보았다. 그 전에 티켓 소지자만이 참가할 수 있는 게임 중 하나인 제기차기에서 통과(3개 이상 통과인데 3개를 참)를 해서 돌림판을 돌렸는데 꼴지인 4등. 싸구려 치솔 하나를 득템했다. 연휴라 사람들이 많아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다이아몬드인지 뭔지를 찾는 게임도 있었는데 2인당 하나인지 나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들.
[정수사]
광복로로 내려온 나는 부산역까지 걸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시간이 좀 빠듯할 듯하여 근처에 있는 남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4시 20분 기차를 탔는데 앞 열차가 동대구역에서 빠져나가지 않아 몇 분 연착했다. 그 때문에 동생과 약속한 시간보다 좀 늦게 집에 도착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책을 사러 갔는데 의도치 않게 부산 원도심 나들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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