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저수지
이영광
잔물결도 패거릴 지어 몰려다니면
죽음의 커다란 입이 되지요
번쩍이는 죽음의 이빨들이 되지요
석삼년에 한번쯤 인육을 삼키던 이 저수지는
백년간 서너 차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죽음의 말라붙은 입속을 샅샅이 파헤쳐보았지만
사라진 몸, 데리고 나온 적 없습니다
살덩이를 뼈째로 녹이며 큰 물결들이
깊은 곳에서 거칠게 찢어선 삼켰겠지요
물 빠진 저수지 바닥엔 흙먼지들이 몰려다니고
굶주린 바람이 서로 부딪쳐 으르렁대고 있어요
물을 호령하여 사람을 빨아당기던 그놈들이요,
구름처럼 무정한 흑막입니다
어서 새 옷을 입혀달라고 악다구니하며
벌거벗은 괴수들이 뛰어다니고 있어요
골짜기 가득 황량한 아가리를 벌리고
십년 만에 또 한번 대청소를 하고 있어요
이영광. [아픈 천국]. 창비. 2010. 39.
- 전작 '저수지'에 이어지는 물 빠진 저수지를 소재로 한 시편이다. 제목조차 아예 '마른 저수지'로 못 박고 있다. 죽음과 메마름의 공간, 황량한 바람만이 몰아치는 곳을 '대청소'라는 말로 끝맺고 있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다. 인종 청소라고 할 때의 '쓸어버림'의 의미인가? '새 옷을 입혀달라고 악다구니'를 한다는 표현에 재생의 의미도 없지 않아서 한쪽으로만 읽을 것은 아니겠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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