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 후기가 늦어졌고, 그런 만큼 세부 사항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와 이 영화를 놓고 잠시 망설이던 나는 이 영화의 감독이 [위플래쉬]를 만든 감독이라는 것을 알고는 어느 정도 믿음이 갔다.
[위플래쉬]는 선생과 제자간의 아주 강한 갈등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몸부림--그것은 당연하게도 부모와 자식간의 애증 관계를 연상시킨다--을 주된 줄거리로 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강렬한 드럼의 리듬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음악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내 뇌리에 각인된 장면은 주인공이 서둘러 콘서트 장으로 가려다가 자신이 몰던 자가용이 큰 트럭과 측면 충돌하는 부분이다. 나는 차를 몰 때 문득 문득 그 장면이 나에게 일어날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이 영화는 영화 배우와 진정한 재즈 카페의 운영을 꿈꾸는 두 여남이 만나 사랑과 일(프로이트는 건강한 삶, 혹은 정상적인 삶을 '사랑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삶'이라고 했던가? 너무 막연한 말이다)의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요즈음엔 보기 힘들었던 뮤지컬 영화이다. (이날 극장에서는 2002년도에 나온 [시카고]를 재개봉하고 있었는데 두 영화 다 뮤지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남자 배우의 진정한 재즈 카페를 향한 열망에는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이 어느 정도 녹아 있어 깊이와 설득력을 주는 반면에 여자 주인공의 여배우를 향한 열만은 다소 도식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더라도 영화는 도입부부터 음악과 춤과 환상을 담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고가도로 위에서 수십 명이 펼치는 노래와 춤과, 각종 퍼포먼스는 우리의 흥을 돋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너무나도 많이 접했던 그런 것이지만, 이 영화가 주는 신선한 충격은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야'라는 닳고 닳은 멘트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헤어진 두 사람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는 점이다. 각자가 꾸어온 꿈은 이루었지만 사랑은 파국을 맞았다(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우연한 재회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그러한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영화는 이 두사람이 바라던 미래를 환상 속에서 재현해 보인다.
이 부분이 나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아름다운 이별'이 있을 수 있다면 저런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일찌기 이형기는 정말 어린 나이에 "낙화"라는 시에서 이것을 절묘하게 표현하지 않았는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이 영화 전부가 "낙화"의 변주라는 황당한 도약마저.
낙화 -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를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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