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에 있는 [현 탁구교실]에서 운동을 하고 뒷풀이로 부근에 있는 [아서원]이라는 중식당에 가서 양장피, 탕수육에다 술을 조금 마셨다. 음주운전은 안 되고 대리를 하기에는 술의 양이 너무 적고 그래서 동대문에 있는 [메가박스]로 향했다. (몇 달 전에 [현 탁구교실]을 찾았을 때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한 편 보았는데, 그 때 본 것은 [덕혜옹주]였다.
동대문까지 이십여 분 남짓 걸어가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중국 '요커'들의 파워였다. 화장품 가게 및 식당을 비롯하여 많은 간판들이 중국어로 되어 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는 대부분 중국어였다. 우리에겐 일상인 것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이들에게는 이국적이고,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겠지. 백두산 여행을 가는 길에 들렀던 '장춘'이라는 도시의 밤거리가 생각난다. 새롭고 낯선 곳, 번화가에서 마주친 '하나 은행' 지점, 한국어로 된 안내 문구들. 중국과 한국은 이제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인적*물적 교류에 있어서도 정말 가까운 나라.
시간대를 보니 "형"과 "어바웃 레이" 중에 한 편을 선택해야 했다. 두 편 다 그다지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으나, 영화를 보면서도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 "어바웃 레이"를 택했다.
일요일 밤 시간이라 안 그래도 대체로 한가한 이곳은 더욱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창가 쪽 의자에 앉아 잠시 쪽잠을 청하기도 했다.
"어바웃 레이"는 원래 제목이 "삼대"(Three Generations)로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남자로의 성전환을 원하는 열여섯 살 레이(원래 이름 라모나)와, 싱글맘으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림(도안) 쪽의 일을 하는 엄마 매기, 그리고 레즈비언인 할머니와 그녀의 애인이 한 집에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 그 중에서도 레이가 성전환 수술을 받기 위해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는 '출생의 비밀'을 중심으로 다룬 일종의 청소년용 성장영화이다.
레이가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성을 지니게 된 것은 정신분석적으로 본다면 인간이란 우리가 보통 생물학적으로 남성*여성으로 구분을 하지만, 양성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특히 여성의 경우 아주 어린 시기에는 남성성이 더욱 우세하다는 것 - 현대의 이론이 정확하게 어떻게 전개되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 - 을 생각해 볼 때, 아버지 - 혹은 아버지를 대리할 인물 -의 전적인 부재로 인해 자신이 '남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굳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어리석게도 혹은 편견?에 사로잡혀 레이가 아버지를 만나고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바꾸는 동화를 잠시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가 자신의 과거를 대면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또한 어머니의 불륜, 그것도 아버지의 동생과의 불륜의 피해자였으며, 자신의 생부가 삼촌이라는 정말로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든 비밀이었다. 그 비밀을 깨닫는 순간에 터져나온 레이의 비명은 자신의 트라우마와의 조우이자 해결의 시발점으로 비친다.
레즈비언이었만 사회적 압력 때문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감추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던 할머니, 그 불행은 다시 딸에게서 이어져서 사회적 금기의 위반으로, 다시 그것은 손녀 - 이제는 손자 - 에게로. 하지만 모든 일이 이렇게 매끈하게 설명될 수는 없으리라. (상황의 인과관계라는 것은 상황을 해명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이런 생각까지도.)
불행한 가족사로 인해 레이의 짐이 너무나도 무거웠던 것인데, 엄마로서는 자신의 잘못이고 아무리 수치스러운 일이었더라도 사실을 이야기해주어 생부와의 관계를 좀 더 일찍 회복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누구에게나 삶의 무게는 무겁고, 부모 역할을 한다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결혼도 하지 않은 주제에 이런 말을?).
영화의 마지막은 청소년 영화답게 레이 삼대와, 아버지의 새 가족, 생부이자 삼촌이 모두 한 자리에 하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는데, 현실의 괴물스러움에 비해서 너무 '소망 충족적'이긴 하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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