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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닥터 스트레인지 - 스콧 데릭슨(Scott Derrickson) [혼자 - 왕십리 CGV, 161113, 14]

by 길철현 2016. 11. 15.



누군가 이 영화를 4D로 보고 나서 별 재미가 없다고 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아마도 그는 롤러코스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딱 한 번 4D 영화를 보았는데 - [오블리비언]이었던가? - 좀 정신이 없기는 했다. 그래서 난 이 영화를 3D 아이맥스관에서 보았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숱한 영웅들 중의 한 명 - 수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엑스맨, 원더우먼, 심지어는 앤트맨도 있다. 거기에다 헐크 등등. 미국인들은 만화적인 영웅이 없으면 나라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다소 엉뚱한 생각이지만 약소국을 억압한데서 오는 무의식적 죄의식이 이런 영웅들을 탄생시킨 것인가? - 이다. '영화의 본질은 이미지'라는 장률의 말과는 무관하게, 3D 영화는 광고 문안처럼 영화의 일부가 되는 느낌을 준다. 예전에 [그래비티]를 볼 때는 파편이 날아올 때마다 몸을 피해야 할 정도로 3D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볼거리는 무엇보다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에서 차용한 '공간 분할 기법'이다. 3D로 보니 이 장면들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위가 순식간에 아래가 되고, 오른쪽은 또 왼쪽으로 된다. 공간 자체가 쪼개지고 결합하고 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앞으로 달려나가던 차가 아래로 떨어지지만 그 차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그냥 앞으로 달린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의 분할이 이 영화의 '마법사들'에게는 영향을 미쳐서 자칫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지금의 이야기가 쉽게 와닿겠지만 이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지구의 경우 중력은 지구의 중심이라는 하나의 곳에 미치지만, 이 마법의 세계에서는 무수히 많은 중력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동진이 잘 설명하고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결투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정적이지 않고 역동적이다. 이것은 3D로 볼 때 더욱 흥미롭다. ([와호장룡]에서 주윤발과 양자경이 대나무에서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처럼.) 


이 영화는 기존의 판타지, SF 영화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매트릭스] - 친한 친구가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정말로 실감나게 이야기를 해주었고, 내가 직접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그 현란함 때문에 그 날밤 꿈이 온통 총천연색이었던 듯하다 -에서 차마 넘지 못하고 프로그램 속 세상에서 겨우 뛰어넘던 현실의 벽을, 우리의 '정신'의 각성 혹은 수련을 통해 - 혹은 마법을 통해 - 가뿐히 뛰어 넘고 만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도 편협하고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세워 놓은 벽에 갇혀 그 벽너머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좁은 구멍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일찌기 플라톤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동굴에 갇혀서 실체의 그림자만 겨우 보고 있을 뿐이라고.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현실의 벽'을 벗어날 때 우리는 시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시간은 앞으로 전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도 돌아갈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일종의 루프에 갇혀 무한반복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공고하여 영화 밖의 우리가  영화 속의 그런 장면을 보는 동안에도 시간은 앞으로 꾸준히 우리와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본 것은 첫째로는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서였지만,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해석 또한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거기다, 관객들을 조금이라도 지루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했는지, 중간중간에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한다(You are Mr.?/ No, Dr. / Mr. Dr./It's Strange./ Who am I to judge? 개인적으로는 케실리우스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스트레인지의 이름을 두고 주고 받는 이 대화가 - 결투를 앞둔 상황에서 - 가장 흥미로웠다). 우리는 상징계적 현실 속에서 살면서 그 현실의 답답함을 벗어나기 위해 계속 상상계를 꿈꾼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다시 상징계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두 시간 남짓 마음껏 상상계를 날아다녔는데, 그 즐거움을 다시 누리려 한 번 더 본 것은 지나침이었다. 한 번 정도면 족할 멋진 꿈인 것이다.  


(답글에 대한 나의 댓글 - 황남숙)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매력적이지요. [스타트렉 다크니스])Star Trek into Darkness에서는 악역이었는데도 굉장한 흡입력으로 우리를 끌어들이기도.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서 특히 생각을 많이 했는데, 공간을 분할하면서 다중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대표적인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의 그림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범주라고 생각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생각들이 현대에 들어오면서 흔들리게 되고, 특히 아인슈타인은 [동시각의 상대성]이라는 글에서 시간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우리의 시간관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오.


김지원은 [사랑의 예감]이라는 소설에서 시간의 뒤얽힘이라는 문제를 구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재 나의 생각은 예전처럼 '따로 떨어져 있는 세상을 인간의 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정확하게 인식한다'는 것에서는 벗어나, 인식과 세상은 불가분의 관계망 속에 있다는 것 - 아인슈타인은 그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또 지나친 상대성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는데 - 입니다. 그 경우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라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각 의견이 존중되는 가운데에서도 시대적인 패러다임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선구적인 인물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 할 일이 참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