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동
원제: Much Ado For Nothing
감독: Kenneth Branagh
출연: Kenneth Branagh, Emma Thomson, Dansel Washington,
Kianu Reeves, Michael Keaton
원작자: William Shakespeare
김영현이 자신의 단편 어디선가에서 말한 걸로 기억되는데 내 기억이 그리 틀리지 않는다면 ‘인도와도 셰익스피어는 바꾸지 않겠다라는 말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발언이고, 어떻게 한 인간과 8억의 인구를 비교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요지였다. 당시 나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제 아무리 셰익스피어가 위대하다 할지라도 진짜 어떻게 8억 인구의 인도와 비교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 누가 했는지 모를 그 말은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보충: 이 말은 칼라일이 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가 그런 말을 할 때의 인도는 ‘영국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는 대상으로서의 인도’이고, 따라서 그의 말은 셰익스피어라면 인도가 가져다 주는 모든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요 근래에 들어 점점 더 인간이 먹고 산다는 문제가 필수적인 것이긴 하지만, 정신적인 문화유산이랄지 정신적인 가치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는 듯하다.
곁말이 좀 길어지긴 했지만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산봉우리를 앞에 대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저절로 고개가 수그려 진다. 물론 그 점은 내가 그의 작품을 읽거나 직접 연극으로 접해서 이해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상당 부분 그의 명성에 대한 다분히 맹목적인 존경 때문이지만, 언뜻 언뜻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몇 마디 말들, 햄릿에 나오는 To be or not to be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귀절, 또 이인화의 소설 제목으로 차용된 ‘내가 누군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혹은 같은 작품에 나오는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는 아직 최악의 상태는 아니다.’와 같은 구절은 정말 하나의 경구처럼 내 귀를 때린다. 인간의 본성, 선과 악, 사랑과 증오, 탐욕, 용기와 비겁함 등등을 그렇게 정통으로 꿰뚫어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이 부분은 비약이다. 그의 작품을 두 편 밖에 읽지 않았으므로 나에겐 이렇게 말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을 믿는다면, 지금까지 인간이 이루어 온 것들에 신뢰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그런 위대한 작품을 써내었는데도, 내가 그것을 이해하는데도 인색하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많은 위대한 작품은 아직도 나에겐 오르기 힘든 산과 같다. 셰익스피어는 시대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너무 난해해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아직 접근을 못하고 있다. 좀 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제 좀 더 냉정하게 이 작품을 한번 생각해보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 작품의 출연진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다는 것이다. 먼저 주인공 격인 케네스 브래너나 엠마 톰슨은 말할 것도 없고, 왕자(돈 페드로) 역엔 댄젤 워싱턴이, 그리고 키에누 리브스도 젊은 귀족 역을 맡고 있는 등 정말 초호화 배역이다. 더우기 놀랄 만한 사실은 마이클 키튼이 야경꾼 대장으로 등장해 우스꽝스런 광대의 역할을 아주 잘 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잘못된 오해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가, 즉 다시 말해 사악한 인간의 간계에 인간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속아 넘어가는가를 정확하게 집어낸 희극이다. [오델로]의 경우는 그러한 오해가 커다란 비극을 불러 오지만 이 작품에서는 모든 오해가 풀리고, 원래 결혼을 예정했던 쌍 외에도 새로이 한 쌍이 맺어지는 해피 엔딩이다.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현대 영어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서 알아듣는다는 것이 지난한 일이지만, 그래도 들리는 부분으로 판단해볼 때는 그 언어 구사가 과연 놀라울 따름이다. 명쾌하지만 독설적인 베아트리스와 독신을 주장하면서도 실지로는 사랑에 빠지기를 기다려왔던 베네딕트 두 사람의 대화부분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직은 좀 시기가 이른 듯하다. 요즈음에 들어서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은 위대한 문학은 높은 산과 같다는 것이다. 멀리서 그 산을 바라보고 그 산이 높다는 것, 또 그 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 산새의 험함, 혹은 빼어남은 알 수 있지만, 무턱대고 그 산을 오려다가는 십중팔구 실패할 수밖에 없으리라. 따라서 등반하는 사람들처럼 문학을 접할 때도 훈련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안내자를 따라 등반하는 것은 좀 수월하겠지만, 스스로 뭔가를 발견해 낸다는 즐거움은 줄어들 것이다.
내 생애의 한 일 년은 셰익스피어에 몸 담구고 지내도 후회스럽지 않고, 앞으로의 내 생애가 더욱 풍요로워 질 것 같은 기분이다.
'영화읽기(예전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밥 로버츠(Bob Roberts) - 팀 로빈스 (1992) (0) | 2017.02.11 |
---|---|
아이가 커졌어요(Honey, I Blew Up the Kid) - 랜들 클라이저 (1992) (0) | 2017.02.11 |
애들이 줄었어요(Honey, I Shrunk the Kids) - 존 조스턴 (1989년) (0) | 2017.02.11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 로버트 벤턴 (1979년 작) (0) | 2017.02.11 |
마이 라이프(My Life) - 브루스 조엘 루빈 [1993년 작 (0) | 2017.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