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 (98년 11월 10일)
(쓰야한다는 책무감과 쓰기싫다는 게으름, 두려움이 교차한다. 긴장하지 말고 별 무게를 두지 말고, 나에게 대화하듯이 쓰는 것이다. )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잘 입장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리얼리스틱하고 감동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에 기만당하는 것 같고, 별로라고 하기에는 사람들의 평이 너무 좋다. 아카데미 주연 남우상과 여우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분명 뛰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왜 이 작품이 신경에 거슬릴까? 나의 개인적 경험과 신경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리얼하게 반영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잭 니콜슨은 정신병자 아닌 정신병자 역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Who flew over the cuckoo's nest”에서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왠지 나는 잭 니콜슨이 이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떨치기가 어렵다. 이유는 이 작품을 나의 주관적 입장에 자꾸만 끼워맞추려 하고 그것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잭 니콜슨은 신경증 환자이긴 하지만 당당하다. 당당한 신경증 환자이다. 그에게도 사랑할 권리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왜 이 이야기가 사랑쪽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성공한 소설가인 멜빈 유달, 그가 즐겨찾는 식당의 웨이트리스인 캐롤(헬렌 헌트), 멜빈의 이웃인 동성 연애자이자 화가인 사이먼 이 세 사람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스토리는 별로 복잡하지 않다. 강박 신경증 환자인 멜빈 유달은 행동에 여러 제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면의 생각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는, 아니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붓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 중심적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이 부분이 이 영화를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처럼 와 닿는다.) 그의 병인이나 그가 받는 고통 등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가 즐겨찾는 식당에서도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고, 그를 쫓아내려 하지만, 그래도 캐롤만이 그를 그나마 감싸준다. 그는 캐롤을 좋아하고 있다. 이웃에 사는 사이먼은 강도를 당하고, 강도들로부터 심한 폭행까지 입어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된다. 그래서 멜빈은 사이먼의 강아지를 임시로 맡아서 키우게 된다. 외롭게 지내던 멜빈에게 강아지는 짐이라기보다도 큰 위안이었다. 그러나, 사이먼이 돌아옴에 따라 정들었던 강아지와도 이별하게 된다.
캐롤에게는 아들이 있는데, 이 아들이 어릴 적부터 호흡기 질환이 있다. 이 아이의 증세가 갑자기 나빠지자, 캐롤은 식당을 그만두어야 할 처지였다. 멜빈은 자신이 아는 유능한 의사에게 캐롤 아들의 정밀 진단을 받게해서 그의 병세는 그 때부터 상당히 호전된다. 캐롤과 멜빈이 가까워지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사이먼이 파산 직전에 이르러, 멜빈은 그를 데리고 사이먼의 부모가 있는 볼티모어로 가는데, 이때 캐롤도 동행하게 된다. 멜빈은 캐롤에게 천국으로 올라가는 말을 했다가(You make me be a better man again) 그 다음 순간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말을 함으로써 그녀를 떠나가게 한다. 절망 상태에 있던 사이먼은 캐롤의 모습에서 예술적인 영감과 용기를 회복한다.
뉴욕으로 돌아온 멜빈은 거리로 나안게 된 사이먼은 자신의 아파트에 머물게 하고, 사이먼으로부터 캐롤을 사랑한다면 가서 고백을 하라는 충고를 듣는다. 멜빈은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방식대로 고백하고, 영화는 두 사람 관계의 긍정적인 발전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멜빈이라는 인물의 성격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리얼리티의 문제에 역시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레인 맨”의 더스틴 호프만의 역할의 “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What about Bob?”의 빌 머리의 역할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멜빈이 어색하다. 잭 니콜슨이 너무 카리스마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경증 환자의 새디즘적인 측면에 대한 나의 이해가 부족한 것일까? 잭 니콜슨의 연기에서 그가 뭔가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그런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성격 자체의 악의성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멜빈 유달의 성격을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에 대해 내가 이 작품에 반감을 느끼는데 비해 다른 사람은 공감을 할는지 모르겠다.
*제목에 대해 흥미로운 것은 내가 영화를 가졌을 때 가졌던 긍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어떤 한계를 지닌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멜빈이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환자들에게 What if this is as good as it gets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어차피 여러분들은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자조섞인 푸념이었다. 이 작품 전체의 메시지도 그런 방향이긴 하다. 이해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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