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탁구 이야기

탁신 최강전 사진 (160416)

by 길철현 2016. 4. 21.



(160430) [최강전에서 우승을 하고 벌써 이 주일이 지났다. 그 날 시합을 엄청 많이 한 탓에 한 동안 허리며, 어깨가 신음소리를 내뱉았고, 지난 주는 체력을 회복하는 가운데, 그리고 우승의 기쁨에 취해 지나갔다. 내가 가입한 카페들에 간략한 후기와 함께 자랑질을 했는데, 자세한 시합 분석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 가기 전에 마무리를 짓고 - 정말 내 탁구 이력에 큰 사건이긴 하지만 - 또 새로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16년 탁신 최강전을 둘러싼 이야기들]

   

(160426, 2234)

 

핵심어. 퀴그메 수첩 분실

 

40년 가까운 탁구 인생에 (조만간에 [나의 탁구 이력 2]를 써야 하는데 너무 긴 시간이고 그 양도 방대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의 시도는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쩌면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해야 할 일이 지난 주 토요일 그러니까 2016416일에 일어났다. 내가 가입해 있는 탁신 동우회의 최강전 - 올해부터는 일 년에 한 번씩 하기로 하고, 우승 상금도 여타 오픈 시합보다도 많았기 때문에, 우리 동우회의 최강 멤버들도 다 참가를 했다 -에서 단식은 물론 복식에서도 우승하는 이변을 나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동우회 자체 시합에서 우승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은 물론, 재작년 정도부터 세 달에 한 번씩 해온 최강전에서도 - 이 때에는 최강 멤버들이 다 참석한 것도 아니었는데 - 최고의 성적이 8강이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도 목표를 8강으로 정해 두고, 시합 다음 날에는 여러 번의 시도에도 번번이 좌절하고 만 무박 2일 지리산 등반기를 몸으로 다시 재체험한다면 써질까 해서 화개로 가는 버스표까지 끊어두었다. (산불 예방을 위한 봄철 입산 금지 기간이 해제된 것도 아니어서 산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시합 당일인 토요일에 헤드 랜턴 두 개와 속옷 등 배낭도 거의 다 꾸려 두었다. 하지 않은 일이 어떻게 흘러갔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일요일에 전국적으로 강풍이 불었기 때문에 안전면만 생각한다면 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승까지 가느라 평소 운동량의 서너 배 이상의 운동을 했기 때문에 내 몸은 어깨, 허리, 다리 곳곳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어서 열두 시간도 넘는 대장정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지리산으로 가는 대신에 차를 몰고 나들이를 떠났다가, 미리내 성지를 걸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어찌나 바람이 세찬지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자동차의 앞 오른쪽 창문마저 고장이 나 끝까지 올릴 수 없는데다가 일요일이라 카센터들이 다 놀아서 창문을 5분의 1 정도 열어둔 채로 청주까지 갔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이 날의 나들이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을 하는 것은 그것이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끝에서 그것에 대해서 언급을 하게 될 지 아니면 그것은 따로 글로 써볼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 이왕이면 같이 하나의 실에 꿰는 것이 더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한다 - 이 날의 나들이 이후로 주로 나들이를 갔을 때 내 생각을 적어두던 수첩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이 날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집 어딘가에 있는데 찾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 별로 중요한 생각들을 적지 않았음에도 - 아니 하나 중요한 글감이 들어 있기는 하다 - 정말 뭔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상실한 듯 가슴 한 켠이 허전하다.)


[여기까지 쓰고 글을 중단했다가 4월 27일, 안양에 탁구를 치러 갔다가 술을 한 잔 한 뒤, PC 방에서 한 시간 정도 글을 썼다.]

(160428. 0025분 경) 


(안양 비산동의 Cyber i Park pc 방에서 이 글을 쓴다. 대리비는 아깝고 술이 깬 것 같긴 하지만


혹시라도 음주에 걸리면 안 되니까, 정신이 맑으니 최강전 우승 소감을 한 시간 정도 적어보려 한다.) 1225?



어디서부터 그 기원을 찾아야 할까? 2013년도였나, 성남에서 열린 남한산성 배 이후 제대로 성적을 낸 적이 없다. (물론 2014년 대학 시합에서 2부로 참석해서 우승을 한 것이 있으나, 그것은 참가자들의 수준이 낮아서 쉽게 얻은 것이고, 역시 2015년 대학 시합에서 단체전 우승을 했으나 그것은 또 우리 팀의 한 명이 괴력을 발휘해서 상대팀의 강자들을 - 그 대표적인 상대가 용인대의 장태진이다 - 꺾어 주어서 어부지리로 얻은 것이었다.) 2014년도에 또 탁구에 열이 올라서 열심히 탁구를 치고 실력도 차츰 회복이 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엘보가 와서 탁구를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덧붙임 : 그러고 보니  2014년도에 성남에서 열린 안드로 배에서 내가 참가한 탁신 팀이 3,4부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이 때 개인전에서는 정말 힘겹게 16강까지 올라갔는데, 16강 전에서 박동진을 만나 게임도 안 되게 지고 말았고, 이 때 나는 내 탁구의 한계를 느꼈다. 엘보가 찾아온 것은 김경수 탁구 클럽에서 시합을 하다가 8강에서 진 것과 관련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내 노력의 한계 같은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정형외과 의사이자 같은 동우회 회원인 서 정 형의 조언에 따라, 라켓을 좀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운동을 다시 해보았으나 공이 잘 나가지 않고 엘보도 지속된 데다가, 박사 논문을 쓰기 전의 예비 단계로 종합 시험을 통과해야 해서 그것을 준비하느라 운동을 게을리 할 수 밖에 없었다.


종합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탁구에 몰입하자 실력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덧붙임 : 2015년도는 정말 탁구에 있어서는 최악의 한 해였다. 11월에 있었던 '안양 다문화배'에서는 한 부수를 내려 4부로 뛰었음에도 예선 탈락을 하고 말았다.]  (허리의 통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책을 보관해 두던 책방을 재개발로 인해 정리를 하고 영국으로 여행을 다녀 온 것에서 아마도 이번 시합 결과의 근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니 근본적으로는 햇수로 7년 넘게 받아오던 (정신분석적) 상담을 종결한 것에서 그 근원을 찾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영국 여행은 사람살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혼자 행을 하는 가운데 겪게 되는 여러가지 사소한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가는 가운데 얻은 자신감 또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인 시각에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난관은 저절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어 뜯는다는 정신으로 매달려야 한다는 것,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영국 여행을 전후해서 20일 가까운 기간을 탁구를 쉬자 허리가 괜찮아졌는데, 다시 탁구에 몰입을 하자 허리 통증이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무리해서 탁구를 치는 대신에 하루 탁구를 치고 하루를 쉬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면서 약도 먹고 또 물리치료도 꾸준히 받았다. 거기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스트레칭도 꾸준히 병행을 했다. 그러자 요통은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또 어느 수위 이상으로 심해지지도 않았다.


[칠곡 저수지를 찾아낸 것도 도움이 되었는가? 그것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를 괴롭히던 수수께끼 하나가 풀린 것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하나의 수수께끼는 홍천 부근 44번 국도 상에서 본 큰 식당과 교회가 있는 곳인데, 그곳은 정말 찾을 수가 없다. 만물박사인 홍기 형에게 말하면 또 방법을  알려줄까?)]


시합 얼마 전부터 나는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 복대를 차고 탁구를 치기 시작했다. 움직임에 방해가 될까 좀 걱정이 되었지만 그보다는 허리를 삐끗하거나 하는 그런 부담이 없이 좀 더 자신 있게 스윙을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는 측면이 많았다. 신현준 코치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한 지 4개월(일 주일에 두 번 삼십 분 하다가 몸에 부담이 되어서 20분 세 번으로 바꾸었다가, 한 번은 자꾸 빼먹어서 20분 두 번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약점인 백핸드를 보완하고 - 어설픈대로 백핸드 드라이브를 자꾸 익히고 - 공을 너무 느리게 처리하는 악습을 바꾸기 위해 포핸드와 백핸드로 중진 정도에서 공을 쫓아가며 좀 빠르게 잡아주는 연습을 한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현준 코치를 비롯하여, 신준기 관장, 박홍기 코치 등과 지속적으로 게임을 한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합 날 아침 시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일찍 깨고는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네 시간 반 정도나 잤을까? 그 전날 낮잠을 좀 자긴 했어도 피로를 많이 회복하지 못해서, 계속 잠을 청했으나 얼핏 선잠이 든 것 외에 더 이상 잘 수가 없었다. 예탈은 없으니까 본선에는 무조건 올라 가겠지만 형편 없는 성적으로 놀림감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한 것처럼 운명애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는 마음도 한편으로는  나를 지탱해 주었다. 진다고 해도 뭐 신경 쓸 사람도 사실 없었다.)


이 시점에서 이 날 새벽에 꾼 꿈 이야기를 써야 할 듯하다. 이 부분은 사실 정신분석 공부 카페인 "공감"에 올리면서 상술했기 때문에 그것을 옮기면서 약간 수정을 해본다.


(시합 날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일어나서 적을까 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잊어 버렸는지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꿈 생각이 났고 다른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퀴그메'라는 세 글자만 또렷이 떠올라 일단 컴퓨터에 기억이 닿는 대로 몇 자 적어 두었지요. 다음은 컴퓨터에 적은 글입니다.


 시험을 보는 꿈이 있고. 저수지를 둘러싸고 청소를 했던가? (이것은 어제 황탁에서 서브 연습을 하고 나오는 길에 골목에서 학생들이 청소를 한 것을 본 것에서 왔다.) 쓰레기들을 버리고 나니까 글자가 나왔는데(‘끝까지 간다’인가에서 김오곤? 한의사가 귀촌하는 사람들의 아버지인 어떤 사람(와룡산 기슭) 집에 가서 수영장을 청소하는 것을 본 것도 있다.) ‘퀴그메’라는 세 글자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황탁은 제가 주로 운동을 하는 [황남숙 탁구 교실]을 줄인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 와서 적은 것을 다시 보니까 어느 정도 일관성 있는 해석이 - 나름대로의 - 가능해 보이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당시에는 맥락이 잡히지가 않고 특히나 '퀴그메'라는 말이 무얼 의미하는 지는 정말로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이 글자에 분명 의미가 있을 듯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 날 출전 선수 중에 '김이레'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와 '퀴그메'가 그나마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머릿속에서 어느 순간 이 낱말은 '퀴니메'로 바뀌었다), 그래서 '우승자 예상란'에 이 선수의 이름을 적었답니다. (우승자를 잘 예측해도 싯가 칠만 원 정도 하는 탁구 러버 한 장이 돌아오는 것이기에 저는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지목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마추어 최강자를 제쳐 두고 - 어차피 한 명만 경품을 받는 것이니까 - 그를 적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나의 예상은 당연히 맞을 수가 없었지요.


그랬는데 어제 아침(월요일)에 잠에서 깼을 때인가 '퀴그메'가 '킬(길) 금메달'을 변형한 것이거나, 아니면 아기의 혀짤배기 소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을 과도한 짜맞추기라고 해도 좋습니다. 또 이러한 생각이 든 것에는 - 지금 글을 적으면서 좀 더 또렷해 지는데 - 그 전날인 일요일에 서울에서 차를 몰고 그냥 드라이브를 하다가, 멀리 진천에서 본 영화, '해어화'도  한몫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복잡 다양한 요소들이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어서 이 영화를 어떻게 평하기가 어렵지만 그 한축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크게 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 저의 글도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네요 - 주인공인 정소율(한효주)이 겪어 낸 상흔이 아름다운 무늬(노래)로 남는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는데, 이러한 해석은 어떻게 보면 내 생각을 영화에 투사한 것이겠지요.


어쨌거나 다시 '퀴그메'와 '킬(길) 금메달'로 돌아와 좀 부연 설명을 하자면 - 합리화? - 우선 '퀴'자는 사실 '키'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보여준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잘못 파악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꿈에서 그 정도의 왜곡이나 변형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그렇게 보자면 '키그메'는 '킬금메달'에서 받침이 빠지고 달자는 망실된 형태이지요. 내 성이 '길'인데 영어 표기는 'Kil'이서서 '키'와 '기'는 또  바꿔칠 수 있다는 생각. (뭐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퀴그메'에서 '킬(길) 금메달'로 이르게 된 과정을 역추적 해보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저는 '키그메'라는 세 글자를 '킬(길) 금메달' 즉, '제가 금메달을 획득한다'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 꿈이 미래의 일을 미리 보여준 것이냐, 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냐고 의문을 던진다면, (이 부분은 제 나름의 독특한 믿음 - 자칫 잘못하면 망상일 수도 있을 텐데 - 과 연관을 시켜봅니다), '해명되지 않는 어떤 무의식적인 것'은 현실과 만날 때 비로소 해석 가능한 것이 된다, 뭐 이렇게 대답을 해봅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시합 날 새벽의 꿈의 전체적인 의미를 나의 얕은 지식으로 파악해 보면, "나의 힘의 발휘를 막고 있는 장애물(쓰레기)을 처리하면 내가 시합에서 좋은 성적(우승)을 거둔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번 시합의 결과와 꿈의 내용이 저에게는 흥미롭게 연결이 되어서, 몇 자 적어 봤습니다.)


꿈과 관련된 나의 해석은 이 정도로 접고, 이 날을 좀 더 차분하게 기록해 보자.


집에서 간단하게 시리얼, 베이컨과 계란 프라이, 사과, 상추 등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 겸 새참으로 맥도널드에서 '환상의 조합'이라는 버거 세트를 먹고, 황탁에 가서 15분 정도 서브 연습을 했다. 원래 차를 고대에 세워두고 (술을 마시면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모임 장소인 대광 중고등학교로 갈까 했으나 그냥 대광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해서 (대리를 할 생각으로) 대광으로 향했다. (신관장이 시합에 쓸 점수판을 세 개 정도 들고 가야 하는데 자신의 차를 못 가지고 간다고 해서 내가 하나를 들고 가면서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차를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략해도 좋을 것이나 기념으로 그냥 적어둔다.) (글이 정리가 안 되어 읽는 사람이 많이 힘들겠으나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날의 기록이다.)

 

대광은 이전과는 달리 차단기를 설치하여 들어오는 차들을 일일히 조사했다. 내 바로 앞에 도착한 재석이 형이 수위에게 오늘 탁신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옆에 있던 오갑이도 나에게 인사를 했는데, 재석이 형 차를 타고 왔는지 모르겠다.

 

아래 쪽 주차장에는 차들이 다 차서, 언덕 위 교회 앞 빈 공터에 차를 세우고 대광으로 향했다. 시합은 세 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고, 내가 도착한 시각은 두 시 반 정도였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앞으로 벌어질 일은 짐작하지도 못한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석태에게 복식을 같이 하자고 한 것. 석태는 왼손 펜홀더로 2부의 강자였다. 단식도 잘 치지만 복식을 특히 잘 해서  나는 처음에 아무나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파트너로 지목하면 되는 것인가 해서 그를 나의 파트너로 신청했는데, 지수가 '석태아저씨랑 뜻을 모으신 거죠?'라고 물음표를 달았다. 나는 가슴을 조이면서 부랴부랴 석태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석태가 쿨하게 '그래 좋아.우승 하자'라고 했다. 물론 석태에게 요즈음 연습을 좀 해서 볼이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승낙을 받고 카페에 들어와보니 이미 석태는 내가 신청한 대로 나의 복식 파트너로 결정이 나 있었다. (펠레처럼 예측이 빗나가기로 유명한 신임회장 충신이 형도 우리 조를 '입상 예감'이라고 해서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좀 찜찜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탁구를 치려고 탁구대로 향하는데 안경 코받침이 찢어져서 - 요즈음엔 대체로 코받침을 연질로 만드는 모양 - 안경점에 다녀와야 했다. 시합을 앞두고 성가신 일이 벌어졌지만 그렇다고 그냥 탁구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나고 나서는 이 일도 나에게는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대광을 나와서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고대 쪽에는 확실히 안경점이 있으니까 그 쪽으로 가는 것이 안전할 듯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정말로 안암 로터리까지 걸어가야 했다(7,8분 거리.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여주인은 한쪽만 갈아도 가격은 같기 때문에 두쪽을 다 갈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하나만 갈겠다고 했다가 금방 교체가

되고 또 새로 교체한 코받침이 기존의 것보다 훨씬 커서 다른 쪽도 갈아달라고 했다.)

 

그렇게 코받침을 갈고 대광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그 때 들어온 줄 알고 다시 인사. 오갑이가 몸을 풀자는 것을 뿌리치고(아무래도 도움이 좀 덜 될 듯해서?) 2부인 신재국 씨와 몸을 풀다가 연습 게임을 했는데 맞잡고는 밀렸어도 2알을 잡으니 널널했다.


(그러고 보니 부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현재 나의 오픈 부수는 4부, 그런데 탁신에서는 정이 형이나, 익범이 형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강전에서 모두 3부로 치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번 최강전에서는 4부 중에서 재석이 형과 나만 빼고는 오픈 부수대로 치는 것이었다. 나는 부수에 대해서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어차피 성적을 내지도 못할 것인데 괜히 부수로 시끄럽게 하지 말고 주어진 대로 치자라고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잠시 후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비가 부슬부슬오고 해서 대광은 굉장은 습했다. 습기가 많은 것 또한 스매싱을 많이 하는 나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습하면 공의 바운드가 덜 되어서 드라이브 건 공을 스매싱하기가 좋은데 실제로 나는 결승전에서 명실공히 아마추어 최강자인 허남규가 드라이브 건 것을 스매싱으로 역공을 해서 몇 개 성공시키기도 했다.


[예선전]


우리 조(6조)는 다른 조보다 한 명이 적은 네 명이었는데, 거기다 권오갑이 목 디스크 증상이 좀 있어서 기권을 했기 때문에 김이레, 김석태 세 명이서 리그전을 펼치면 되었기 때문에 체력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예선전은 시간 관계상 3판 양승으로 하기로 했다. 


1. 김석태(2) 1)패(13) 2)승(8) 3)승(8) (점수는 추정치. 잘 기억이 안 남)

복식 파트너인 석태와 첫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전형은 달랐지만 내 레슨 코치가 왼손이라 석태와 게임하는 것이 수월했다. 포핸드와 백핸드 스매싱이 잘 들어가서 석태가 쩔쩔 맸다. 그런데, 첫 세트는 막 앞서 나가다가 마지막에 범실을 하는 바람에 듀스 가서 지고 말았다. 하지만 2, 3세트도 계속 밀어부쳐서 승리를 낚아 챘다. 석태는 내 공격을 계속 받아내고 내 스매싱에 역습을 가하기도 했으나 내가 더욱 세게 맞받아쳤기 때문에 석태는 힘에서 나에게 밀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예선전이 끝나고 시간이 많이 남아 석태와 연습 게임을 했는데, 여기서도 나는 3대 1로 이겼다.


2. 김이레(3) 패(9) 승(5) 패(7)

이레도 내 스매싱에 정신을 못 차렸으나 이내 내 공격을 버텨내면서 코스를 어려운 곳으로 빼서였는지 앞서다가 지고 말았고, 그 다음에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의 페이스에 말려 패하고 말았다.


[김이레와 김석태의 시합에서는 김이레가 김석태를 2대 1로 이겼다. 그래서 나는 조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 

처음부터 복대를 하지는 않았던 듯한데, 본선에 올라가면서부터인가, 하여간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허리가 걱정이 되어서 복대를 하기 시작했다.


(32강) 이춘헌(2) 1)승(8) 2)승(5) 3)승(4)

춘헌이는 요즈음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해 탁구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연타가 좋고 까다로운 상대라 살짝 긴장을 했다. 특히 그의 서브 처리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막상 시합에 들어가자 1세트는 약간 고전을 하기는 했으나 2세트부터는 스스로 무너졌다. 내 공격을 받아내지 못했고, 자기 공격에서는 범실이 많았다. 그래서 아주 쉽게 이겼다.


(16강) 노민우(0) 1)승(9) 2)승(9) 3)승(8)

민우는 백핸드도 좋고 특히 다리가 좋아 공이 계속 올라오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첫 점수에서 내 스매싱을 계속 받아올리는 바람에 내가 범실을 해서 점수를 내주었을 때는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렇지만 결국 파워나 파이팅에서 내가 앞섰기 때문에 뒷심이 좋은 민우였지만 내 공격을 받아내지는 못하고 무너졌다.


(8강) 김태신(3) 1)승(8) 2)패 3)패 4)승(6) 5)승(9)

태신이와의 시합은 어떻게 풀었는지 잘 생각이 안 난다. 좀 무아지경에서 탁구를 쳤다고 해야할까? 태신이가 내 긴 서브를 좀 타주고, 거기다 스매싱도 몇 개 들어간 것이 주효했다. 특히 기억이 나는 것은 포핸드로 오는 긴 서브를 스매싱으로 때려서 성공을 시킨 것이다. 마지막 세트에서는 5대 5, 8대 8 등 동점을 허용해서 내가 불리했는데, 어쨌거나 괴력을 발휘하여 결국에는 내가 승리를 낚아 챘다. 나는 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쳤고, 태신이는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리라. (1세트를 이기면서 잘 하면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가 2,3세트를 내 주면서 패색이 짙었다가 4세트를 쉽게 따면서 한 번 해보자, 하다가 5세트에서는 엎치락뒤치락 어떻게 어떻게 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8강까지 하고 복식에 들어갔다. 시간 관계 상 나중에 좀 더 보충을 하도록 하고 간략하게 적도록 해야겠다.]




1. 김진황(3), 김의성(4) 2점 1)승(8) 2)승(7)

진황이가 구찌를 엄청 했으나, 거기에 말리지 않고 꿋꿋이 쳤다. 아무래도 공을 안 친 의성이가 미스가 많아서 낙승.


2. 허남규(0), 이선화(1) 4점 1)패(7) 2)패(8)

너무 얼었던가? 선화의 스매싱도, 또 남규의 드라이브도 막을 수가 없어서 형편없이 패하고 말았다. 1부들은 이길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전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던 듯하다. 성수와 응배 팀이 이 팀을 이긴 것을 보면 이들이 무적은 아니었다.


[8강전] 신준기(2) 노민우(3) 승 승 패 패 승(5)

1,2세트는 쉽게 땄는데, 3,4세트에서는 신관장의 서브를 타고, 커트라고 생각했는데 커트가 아닌 공이 많았고, 어쨌거나 서브가 잘 구분이 안 되었고, 안전하게 치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상대도 만만치 않아, 5세트까지 갔다. 5세트에서는 이래서는 안 될 듯해서 강공을 퍼붓기 시작해서 점수차를 벌이며 쉽게 승리를 낚았다.


(4강) 조훈태(0) 박지수(1) 4점 1)승(9) 2)패 3) 승  4)승(8) (3대 1로 이겼는지 아니면 3대 2로 이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 시합이 가장 큰 고비였다.) 석태에게 물어볼 것.

이 시합에서도 너무 무리하게 공을 치려고 하다가 범실을 하고, 또 공격을 해도 디펜스에 막히고 해서 굉장히 답답했는데, 석태가 공을 잘 만들고, 또 내가 드라이브를 말고 한 것 등이 주효해서, 훈태가 좀 퍼기도 했나, 우리가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두었다.


(결승) 김응배(2) 김성수(3) 승(7) 승(6) 승(7)

이 팀은 석태가 꼬는 공을 처리하지 못해서 제일 게임이 쉬웠다. 우리로서는 어떻게 이 팀이 결승전에 올라왔지 할 정도로. 석태가 드라이브로 말아서 올라오는 공을 내가 스매싱을 해서 게임을 쉽게 풀고 쉽게 우승을 낚아 챘다.


[단식 4강] 김진우(2점) 승 패 승 승(5)

진우는 볼이 강한 대신에 서비스가 없고 박자가 어렵지 않아 승산이 있었다. 내 긴 커트 서브를 강하게 공략하지 못하고 올기는 정도여서 나는 그 공을 스매싱을 해서 그의 기를 꺾었다. 진우가 아무 말도 없어서 내가 서브를 잘 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우는 내 서브가 보이지 않아서 졌다고 투덜거렸다.

 

[결승] 허남규(4점) 패 승(6) 승(10)

남규의 패턴이 첫 세트를 내어주고 뒷세트를 따는 것이라는 걸 간파했던가? 아니면 지난번 시합에서 첫 세트를 뺐고 2,3세트를 내어준 것(특히 2세트에서 10대 8로 앞섰지만 결국에는 듀스까지 갔다가 지고 만 것)을 머릿속에 강하게 인식을 하고 있었던가? 첫 세트를 내어줄 때만 해도 안 된다고 생각을 했던가? 2세트를 어떻게 쉽게 뺐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없이 게임에만, 한볼, 한볼에만 집중했던가? 3세트, 8대 8부터의 상황은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이 때쯤에는 공격은 물론 수비도 상당히 올라와서 남규의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 쓴 것처럼 역습도 간간히 성공을 거두었다. 아마도 한 점은 디펜스로 따고, 또 한 점은 공격으로 따내서 10대 8이 되었다. 남규가 상대적으로 포핸드에 미스가 좀 있다는 것도 각인하고 있었다. 남규의 서브. 최대한 강하게 리시브를 하고 싶었으나 서브가 그렇게 공략을 할 수 있게 오지 않아서, 2구를 넘기고 나서는 3구를 두들겨 맞아 10대 10이 되고 말았다. 10대 9에서는 오른쪽으로 최대한 뺐으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10대 10 듀스.

내 서브에서 공격 찬스가 오지 않아 디펜스 모드로 들어갔는데 남규의 공격을 두어 개 막아내자 남규가 또 범실을 내고 말았다. 어드밴티지 상황에서 남규의 서브를 리시브를 하자 남규의 3구 공격, 엉겁결에 막았는데 그것이 네트를 맞고 공이 탁구대 위에 떨어졌다. 남규가 그 공을 처리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나는 이 날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우승을 거머쥐는 영광을 누렸다. 뒤풀이 장소인 남도에서도 나는 주인공이었고, 2차는 내가 샀다. 노래방도 내가 내려고 했으나 시합에 지친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지는 바람에 나도 대리를 해서 집으로 왔다. (나중에 좀 더 보충하도록 하자.)























































결승전 사진 몇 장 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