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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투키디데스 -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Thucydides (2001)

by 길철현 2016. 4. 23.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고
(Thucydides, [The Peloponnesian War], Penguin)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고대 지중해 인접국의 방대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
고 있긴 하지만, 그리스와 페르시아간의 전쟁--우리가 흔히 '페르시아 전쟁'이라
고 부르는--을 그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투키디데스의 이 책은 한 걸
음 더 나아가 제목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듯이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 즉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동맹국들과,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동맹
국들과 식민국가들 간의 27년간에 걸친 싸움만을 다루고 있다. [역사]를 읽으면서
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류의 역사란 전쟁사"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김했다.
일설에 의하면 투키디데스는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일부를 직접 낭독하는 것
을 듣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럼에도 두 사람의
역사 기술 방식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로
서 역사 서술의 길을 열었다면, 투키디데스는 헤로도토스의 신화적이고 설화적인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엄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해서, 그의 뒤를 이은 역사
서술의 전범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엄정한 태도는 그 자신이 스스로 밝힌
책의 집필 방향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 . . it may well be that my history will seem less easy to read because of
the absence in it of a romantic element. It will be enough for me, however, if
these words of mine are judged useful by those who want to understand
clearly the events which happened in the past and which (human nature
being what it is) will, at some time or other and in much the same ways, be
repeated in the future. My work is not a piece of writing designed to meet
the taste of an immediate public, but was done to last for ever. (24-25)

고대 그리스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이천 몇백 년 이상의 시차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과 사고를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
이 철학*문학*미술 등에서 이룩한 업적은 아직도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
듯이, 투키디데스의 이 책도 저자의 야심에 손색이 없으리만큼 그 기술 방식의
정확성과 논리 정연함이 놀라울 따름이다(솔직히 읽어내기 힘든 부분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이 책의 훌륭함에 대한 감탄이 앞선다). 이 책의 훌
륭함은 27년간의 전쟁 기간 중 전쟁의 시작부터 21년 동안의 전쟁의 경과(안타깝
게도 이 책은 미완성이다)를 엄격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술이 인간 본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공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자신이 아테네의 장군으로 직접 전투에 참가하기
도 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또 그의 아테네를 향하는 애국심을 생각해 볼 때, 그
가 이렇게 객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페르시아 전쟁이 당시 지중해 연안의 최강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세력 확장을 위
한 침략 전쟁이었던 것과는 달리,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해상권을 장악한 아테네
와, 아테네의 세력의 확대를 막으려는 스파르타 간의 알력으로 발발된 전쟁이었
다. 역사학도가 아닌 나에게 있어서 더욱 흥미가 갔던 것은 전쟁의 경과보다는
소설처럼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였던 페
리클레스, 스파르타의 지장인 브라시다스(Brasidas), 아테네 패배의 결정적인 원
인이 되었던 시러큐스 원정을 반대했으면서도 군대를 지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테네의 장군 니키아스(Nicias), 그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오고가며 박쥐 같
은 역할을 하는 Alcibiades. 그 밖에도 전쟁의 와중에 인간들이 보여주는 행동 양
식은 인간의 본성과 삶을 다시 한번 고찰해 보게 해주었다. 특히 전염병에 휩싸
인 아테네 사람들의 반응, 민주주의와 과두정치 사이에서 혼돈에 빠진 Corcyra
인들의 행동, Thrace인들의 야만적인 살육 등은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서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Thrace인의 야만적인 살육은 문명 사회의 전쟁에서
그대로 자행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차 세계 대전에서의 나치의 유태인에 대
한 만행은 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 . . they resolved to spend their money quickly and to spend it on
pleasure, since money and life alike seemed equally ephemeral. As for what is
called honour, no one showed himself willing to abide by its laws, so doubtful
was it whether one would survive to enjoy the name for it. It was generally
agreed that what was both honourable and valuable was the pleasure of the
moment and everything that might conceivably contribute to that pleasure. No
fear of god or law of man had a restraining influence. As for the gods, it
seemed to be the same thing whether one worshipped them or not, when one
saw the good and the bad dying indiscriminately. As for offences against
human law, no one expected to live long enough to be brought to trial and
punished: instead everyone felt that already a far heavier sentence had been
passed on him was hanging over him, and that before the time for its
execution arrived it was only natural to get some pleasure out of life. (126-7)
[전염병이 아테네를 휩쓸었을 때]

To fit in with the change of events, words, too, had to change their usual
meanings. What used to be described as a thoughtless act of aggression was
now regarded as the courage one would expect to find in a party member; to
think of the future and wait was merely another way of saying one was a
coward; any idea of moderation was just an attempt to disguise one's
unmanly character; ability to understand a question from all sides meant that
one was totally unfitted for action. Fanatical enthusiasm was the mark of a
real man, and to plot against an enemy behind his back was perfectly
legitimate self-defence. . . . (209) [혼란에 빠진 Corcyra 인들의 행동 양태]

The Thracians burst into Mycalessus, sacked the houses and temples, and
butchered the inhabitants, sparing neither the young nor the old, but
methodically killing everyone they met, women and children alike, and even
the farm animals and every living thing they saw. For the Thracian race, like
all the most bloodthirsty barbarians, are always particulary bloodthirsty when
everything is going their own way. So now there was confusion on all sides
and death in every shape and form. Among other things, they broke into a
boys' school, the largest in the place, into which the children had just
entered, and killed every one of them. Thus disaster fell upon the entire city,
a disaster more complete than any, more sudden and more horrible. (449-50)
[Thrace인들의 야만적인 살육]

얼마 전에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다가 인류가 달착륙한 사실을
두고(이것도 지금에 와서는 몇십 년전의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이만한 일을 사
람이 할 수 있게 됐는데도 땅위에서는 사람끼리 피를 흘리는 일을 막지 못하다
니'하고 개탄인지 푸념인지를 늘어놓는 구절을 발견하고는, 우리 삶의 이중성 내
지는 불가해함을 다시 한번 뼈가 시리게 절감했다. 인류는 망망대해를 고독하게
항해해 나오는 가운데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또 많은 사실은 여전히 이해하
기 힘든 것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인류가 알아낸 것이 곧바로 개인의 지식이 되
는 것은 아니기에, 개개인은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항해를 해야 한다. 투키디데스
는 전쟁의 원인이나, 전쟁의 방지를 위한 방책 등을 갈파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가 보고 듣고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당시까지 서방에서는 가장 큰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을 그의 능력이 닿는 껏 최대한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해 내
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 삶의 가장 치열하고 비극적인 모습들을 만나게 되
며, 우리는 그러한 비극 앞에서 정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
게 된다.
곁가지적으로 하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아테네의 민주주
의의 발달과 경제적인 번영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노예 제도와 또 숱한 식민지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 진 것이라는 점이다. 서구의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과 번영
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말을 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