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유대인과 사회
(162) 근대가 안고 있는 독특한 위험이자 가장 큰 도전은, 이때 처음으로 인간이 인간을 상이한 환경과 조건의 보호막 없이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 버림받은 하층민과 벼락부자 사이에서
(164) 유대인의 정치적 * 경제적 * 법적 평등이라는 현실에 직면한 사회는 어떤 계급도 유대인의 사회적 평등을 승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그리고 유대인 가운데에서도 오직 제한된 소수만을 수용할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다.
(172) [1808년 무렵] 당시의 수많은 서신들 가운데 어느 것을 보아도, 귀족이나 지식인이 잘 알지도 못하는 동부 유럽의 유대인에게 보내던 경멸을 이제 잘 아는 베를린의 교육받은 유대인에게 보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은 소수의 부유한 금융계를 지배하는 집단과 다수의 일반, 중산층이거나 하층 계급인 유대인으로 크게 양분된다는 사실을 명념해야 한다.]
(179) 거리에서는 일반인이고 집에서는 유대인
2. 힘센 마법사
(193) 이스라엘을 나머지 인류와 묶고 있던 경건한 희망의 강한 끈을 실질적으로 끊은 것은, 신을 믿기에는 너무 '계몽되었고' 항상 예외적인 위치로 인해 자신을 믿을 정도로 충분히 미신적이었던 저 '예외 유대인'의 기만이었다.
3. 악과 범죄 사이에서
(202) 유대인이라는 '악덕'과 동성애라는 '악덕'을 서로 결합시킴.
(207) 디즈레일리 - '선민 중의 선민'
제4장 드레퓌스 사건(1894년 4월)
1. 사건의 진상
(218) 유대인 장교 한 사람에게 저지른 프랑스의 과오는, 한 세기 뒤 독일계 유대인에 대한 박해 전체가 불러일으킨 것보다 더 큰 분노와 단합된 반발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제정 러시아조차도 프랑스를 야만 국가라고 비난했으며, 독일에서는 황제의 측근까지 1930년대라면 급진 언론만이 위험을 무릅쓰고 표출할 수 있던 분노를 공개적으로 표현했다.
(220) 드레퓌스 사건의 정치적 함의 - 1) 유대인에 대한 증오 2) 공화정 자체, 즉 의회와 국가 기구에 대한 의혹
2. 제3공화국과 프랑스 유대인
3. 공화국에 저항하는 군대와 성직자
(238) 드레퓌스 재판 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유대인이 얼마나 결사적이고 정력적으로 군대 내에서 자리를 확보하고자 했는지를, 또 당시에도 벌써 이들에 대한 적대감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몇 안 된는 유대인 장교는 언제나 지독한 모욕의 대상이었고, 꾾임없이 동료와의 결투를 강요당했다.
4. 국민과 폭민(mob)
(242) 폭민은 일차적으로 각 계급의 낙오자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이 때문에 폭민을 국민과 혼동하기 쉽다. 국민 역시 모든 계층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국민이 모든 혁명에서 진정한 대의제를 위해 투쟁했다면, 폭민은 항상 '강한 자', '위대한 지도자'를 소리 높여 외친다. 폭민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하며,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 의회 역시 증오하기 때문이다.
[폭민에 대한 아렌트의 언급은 논문과 관련해서 중요한 부분이다. 나치즘은 히틀러와 폭민의 결탁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
(243) 폭민이 유대인 가게를 습격하고 거리에서 유대인을 공격했을 때, 상류사회는 격렬한 폭력을 아이들의 무해한 놀이쯤으로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244) 폭민의 눈에는 유대인이 자신들이 증오하는 모든 것에 대한 구체적 실례였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이 사회를 증오한다면 사회가 유대인을 얼마나 관대하게 다루는지를 지적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정부를 증오한다면, 국가가 어떻게 유대인들을 감싸며 이들과 한통속인가를 지적하면 되었다. 폭민이 유대인만을 제물로 삼았다는 생각은 잘못되었지만, 어쨌든 유대인은 그들이 애호하는 희생물 중 으뜸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250) 레지스- "유대인의 피로 자유의 나무에 물을 주라" (알제리의 시장) 유대인 탄압
(253) 에밀 졸라 - [나는 고발한다]
(257) 프랑스 가톨릭 교도의 태도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 세계 가톨릭 언론이 일치단결하여 드레퓌스에 반대한 사실이다.
- 가톨릭계 정치인들 - 유대인이 영국의 첩자이며, 따라서 유대인 배척은 영국 혐오와 동일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단언하면서 반유대주의를 제국주의와 연계시켰다.
5. 유대인과 드레퓌스파
6. 사면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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