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 메이손, 소설 소크라테스, 최명관, 서광사
<감상> 고전에서 얻은 지식과, 그리스의 직접적인 답사 내지는 여행을 기초로 하여 엮은 코라 메이손의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의 기본적인 개요와 당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맛볼 수 있는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적절하게 해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러셀은 소크라테스가 저지른 철학적 오류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제시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이다. Unlike some of his predecessors, he was not scientific in his thinking, but was determined to prove the universe agreeable to his ethical standards. This is treachery to truth, and the worst of philosophic sins.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42) 러셀의 플라톤 비판의 핵심은, 플라톤이 철학에 윤리를 너무나 과도하게 도입하였고, 또 그러한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교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러셀의 비판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또 그의 비판이 한편으로는 사태의 단순화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이 책을 읽으면서 갖게 되었다. 코라 메이손의 다음 글을 보자. 과학자들이 흙, 공기, 불, 물을 가지고 세계를 설명한 것은 옳다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사물들이 어떻게 지금처럼 존재하고, 또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결코 왜 그렇게 있고 왜 그렇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설명한 것은 아니었다. (97) 당시의 과학 수준은 세계를 물리적으로 해명하는데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혔고, 그러한 상황에서 좀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명은 인간의 이성을 밀고 나가서 답을 찾아봐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임무 중의 하나가 소피스트적인 상대주의를 넘어서는 진리의 추구이기도 했지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이 보이는 유물론적 세계관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그의 또다른 임무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해보기도 한다. 그렇긴 하지만, 신을 선한 존재로 파악하고, 또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선을 아는 것이며, 사후 세계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것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플라톤을 공부하면서 여러 측면에서 검토해 보아야 할 부분이리라. (세계는 과연 파악이 가능한가? 아니 세계란 무엇인가? 이 문제는 다시 20세기 물리학의 기본 원칙인 ‘관찰자와 대상은 동시에 묶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에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파악한 진리가 그대로 타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리라.) 이 책은 소크라테스 철학을 깊이 있게 소개하고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인류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명이면서도, 그 생애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전 생애를 간략하게나마 핵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측을 오가며, 박쥐 같은 역할을 한 알키베이데스와 소크라테스와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사람 중의 하나인 멜리투스?가 시인이라는 사실이 플라톤이 그의 [국가]에서 시인 추방론을 주장한 것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게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이성에 호소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일생 동안 쉬지 않고 한 일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일이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을 그칠 줄 모르는 질문을 통해 바로잡아 가는 일, 대화의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의 빗나간 생각을 이치에 맞게 바로잡아 가게 하는 일이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한 일이라 하겠다. (18) [최명관]
*그<소크라테스-인용자>는 풍부한 지혜, 그 지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안정된 마음,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는 소박함을 간구하였다. 나<크리톤-인용자>에게 무척이나 큰 감동을 준 그 기도의 처음은 이러했다. “내 속을 아름답게 해주소서.” (29)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그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했으며, 그들의 의견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 갔다. 그는 마침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실제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스스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사물에 대해 철저하게 생각하는 일이 절대로 없었다. 그것은 무척 슬픈 일이었다. (44)
*소크라테스가 성인이 되어 좀더 폭넓게 사람들과 교류를 가지며 사색을 하게 되었을 때도, 그는 역시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신에 관해서는 무세<소크라테스의 친구-인용자>와 마찬가지로 혼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많은 종류의, 많은 단계의 사상이 제멋대로 섞이고 합쳐져서 어떠한 기준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더욱이 한 번도 정리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혼란 상태인가를 깨닫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해서든지 좀 정리해 보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48-9)
*사람들은 신들이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고 굳게 믿었다. 즉 힘이 세지만 다소 짓궂은 면을 가진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그리고 올림푸스 산 위의 높은 하늘에서 인간들의 숭배를 받으며 잔치를 즐기고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신들이 옛날과 똑같다고 여기지 않는다. 신들은 예전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며, 어떤 개인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도와 주는 일도 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신의 은총에 대한 생각이 잠재적으로는 남아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감탄의 감정을 나타낼 때 가장 좋은 표현으로 신이 그 승리자 뒤에서 그를 도와 주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50)
*이 사고 방식<소크라테스의 사고 방식-인용자>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들이 인간들을 돌보아 준다는 점이다. 그는 이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신들은 왕이나 옛날의 영웅들만을 보살핀 것이 아니라 석공 소프로니쿠스의 아들인 소크라테스도 돌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면 신들은 선했다. 그에게 보내지는 신호를 생각해 볼 때 그는 이것을 믿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인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선함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인간들에게서도 오로지 선만을 원한다. 신들이 거짓말하고 훔치고 시기하고 노여워한다는 옛날 이야기들은 그보다 더 좋은 것을 하나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인 것이다. 선함이야말로 신들의 참된 징표였다. 선한 신들과 일치되지 않는 것은 모두 인간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56)
*그<아낙사고라스-인용자>는 태양이란 신이 아니라 스파르타와 주변의 예닐곱 나라를 안고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보다 조금 큰 시뻘겋게 달구어진 금속 덩어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달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장을 계속해서 펴나갔다. 달은 그 자체의 빛이 없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흙으로 되어 있고, 달에는 언덕과 골짜기도 있을 것이며, 아마도 사람들이 살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달이 회전하다가 지구와 태양 가운데 들어서면, 한낮에도 태양이 빛을 잃어 검게 보이는 현상을 초래하며,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가 태양과 달 사이에 들어서면 달도 캄캄해진다고 하였다. (80-1)
*엠페도클레스는 사람을 관찰하면서 사람과 같은 놀라운 생물이 출현하기까지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며, 사람들은 그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발전되어 온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과거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괴상한 동물들이 생겨나고 사멸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가운데는 머리와 가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는 것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의 얼굴을 한 소와 소의 얼굴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모두 살아 남기에 적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잊혀지고 말았다. 또한 처음에는 모든 동물의 등뼈가 한 덩어리였으리라고 짐작되는데 그 중 하나의 등뼈가 우연하게 구부려지고 꺾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익한 발전이었고 또 이 발전은 계속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사람의 등뼈가 아주 많은 조각으로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엠페도클레스는 생각하였다. (92) [엠페도클레스는 데모크리투스가 원자론을 주장한 것처럼, 진화론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흙, 공기, 불, 물을 가지고 세계를 설명한 것은 옳다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사물들이 어떻게 지금처럼 존재하고, 또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결코 왜 그렇게 있고 왜 그렇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설명한 것은 아니었다. (97)
*그<소크라테스-인용자>는 이 세상에는 놀라운 일도 많고 멋진 구경거리나 신비한 소리도 많지만 ‘선’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한 것은 그들이 한 모든 일의 ‘왜’, 즉 그 이유인 동시에 근거였다. 사람들은 그들이 좋다고 여긴 것을 하게 마련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웃의 물건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했다면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것을 얻고 싶어했기 때문인 것이다. 아무도 악이라는 것을 미리 알면서 악을 행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무지하다는 것--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인가? 아무리 우리의 신체가 건장하고 우리의 정신이 우수하다고 할지라도 만일 우리가 ‘선’을 모른다고 한다면 우리의 생활 전체는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늘 무지를 증오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무지가 지극히 추하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히 느꼈다. (99)
*그 신탁이 분명하게 의미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무지를 알 때에는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105)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한 인간’이라는 신탁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해명]
*죽음이나 그 밖의 어떠한 것도 수치심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184)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의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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