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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돌아보다

1980년 11월 10일 [일기]

by 길철현 2020. 3. 13.


오늘은 정말 재수없는 날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테니스를 친 것까지는 좋았다.

국민학교에서 나가라는 방송이 나왔는데도 나는 계속 테니스를 쳤다.

그러다가, 공이 남의 집 위로 올라가서 지붕 물받이에 올려 있는 것 같아서 계속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운동장을 둘러 보던 선생님에게 걸려 불려 오게 되었다.

나는 걸여가면서 "꾸중 좀 듣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큰 착오였다.

그 선생님은 그 채를 내일 와서 찾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나에게 학교, 학년, 학반, 이름을 대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전에 꾸중 듣던 일이 생각났다.

고속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가가다 꾸중들은 일.

두류산 공원에서 꾸중들은 일.

총알 줍다가 꾸중들은 일.

나는, 내가 공을 찾기 위해 거기에 올라갔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 선생님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 미웠다. 아니, 내가 한 말이 그 선생님을 의심나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해[왜?] 내 말을 못 믿어줄까? 또, 그 선생님은 나에게 학교, 학년, 학반, 이름을 대라고 하는 것이 미웠다.

왜 사람들은 우리가 잘못했을 때, 학교, 학년, 학반부터 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왜 우리 사회는 남의 말을 못 믿는 것일까? 나는 사람들이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선생님이 나를 숙직하는 선생님에게 데리고 가자 그 선생님도 나의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우리 집의 직업까지 물었다. 나는 그 선생님이 우리 집 직업을 물을 때 나는 화가 났다.

숙직하시는 선생님이 여러 가지를 물을 때 내 머리에는 laugh라는 영어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숙직하는 선생님이 저를 용서해 줄 때는 기뻤다.

그 선생님은 나에게 공을 찾으면 "나에게 말하고 찾지?"라고 말할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선생님이 우리 같은 처지가 되었을 때에도 누구에게 알리고 그 일을 하겠느냐고.

끝으로, 나는 서로 믿지 못하고 사는 우리 세계에서는 누구나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서로 믿는 사회가 되어야겠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이 일기는 겪었던 일을 내 진솔한 감정을 섞어가면서 쓴 거의 최초로 제대로된 일기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로서의 일기의 고유한 기능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학교를 마치고 집 앞에 있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나가라는 경고 방송도 무시한 채 벽치기 연습을 하다가 공이 남의 집 지붕 위 물받이에 올라간 듯했으나 찾을 수 없어서 애를 먹고 있는 가운데, 지나가던 선생님은 혹시 '도둑이 아닐까?'하는 의심으로 나를 몰아 부쳤다. 이 당시 이 선생님이 왜 라켓을 다음 날 와서 찾아가라고 했는지 그 까닭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라켓이 탐이 났을 개연성도 무시할 순 없다. 사회로부터 천대받는 부모님의 직업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던 나에게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 숙직 선생님의 질문도 비수처럼 와닿았다. 나에게 허클베리 핀과 같은 달변의 혀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라켓을 빼앗기지 않으려 나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내 감정을 토로하는 이 일기에서마저 보통 일기의 마무리 말로 등장하는 "도덕성"을 빼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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