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매트릭스]가 우리에게 준 충격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다. 먼저 영화를 본 친구는 나로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입담으로 그 착상의 기발함을 극찬했다.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고 조작된 것이라는 느낌, 그리고 그 조작 밖에 현실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 이러한 착상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플라톤의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 이르게 된다. 실체라고 생각한 것이 실체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또 하나 드는 생각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사물' 혹은 '세계'(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와 거리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것(그러나 사실 우리는 언어 이전이 어떠한 상황인지를 잘 알 수가 없다). [언어가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좀 더 추찰해야 한다.]
[매트릭스]보다 일 년 전에 나온 이 영화도 그 착상만큼은 기발나다. 밤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류. 그러나 그들의 삶은 자신들이 생각하듯 자유롭게 영위되는 것이 아니라, 조작된 기억과 외부 세계를 정신력으로 바꾸는 힘, 즉 "튜닝" 능력을 갖춘 외계인들의 실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예전에 [스타워즈]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기도 한데, [다스 베이더]는 거의 맹목적적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정말로 무미건조한 삶, 웃음이라고는 전혀 없는,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등장할 때 멋진 음악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절멸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구인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 기괴한 외계인들도 정말 삶을 향유한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착상은 기발나지만 그 전개나 흥미면에서 뒷받침이 안 되는 이유는 예산 문제 등으로 CG가 조악하고, 장면들도 단조로운 데다가, 영화의 전개 자체 또한 발견의 즐거움이나 반전 등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부분은 일정 정도는 내가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다 보고 영화를 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숨겨진 명작'이라고 평하지만 나로서는 그 착상이 신선하다는 것 외에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감독은 이 작품은 공동 각본가이기도 한데, 이 영화의 착상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꿈에서 얻은 것은 아닐까?)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피터 위어가 감독하고 짐 캐리가 주연을 맡은 [트루먼 쇼]라는 영화도 이 영화와 같은 해에 나왔다는 점이다. 일종의 '몰래 카메라' 세상 속에서 자신만 그것을 모르고 살아온 트루먼이 결국 그 무대를 박차고 나간다는 것과 이 영화의 주인공 존 머독이 우연찮게 얻게된 튜닝 능력을 통해 외계인들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낸다는 것, 둘 다 그 형식은 다르지만 자신이 속해 있던 세상을 박차고 나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성장통을 그린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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