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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1917 - 샘 맨데스(Sam Mendes) (2019) [20201203-04]

by 길철현 2020. 12. 7.

샘 맨데스의 영화로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1999년에 나온 [어메리칸 뷰티]이다. 그 영화에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검은 비닐 봉지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비디오에 담은 장면, 그 봉지가 전해주는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던 등장 인물의 대사. 그리고, 부부의 갈등을 다룬 [Revolutionary Road]라는 영화도 흥미롭게 보았다. 두 영화 다 부부 혹은 가족 관계 이야기인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백 년 전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전쟁 영화이다(그러고 보니 [Skyfall], [Spectre] 등의 007 영화의 감독도 맡았고. [스카이폴]은 그런 대로 흥미로웠지만, [스펙터]는 스토리의 전개가 좀 황당했던가? 거기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갱 영화인 [Road to Perdition]도 있다. 이 영화는 보지 않은 듯하다). [이 영화는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에서 [기생충]과 경쟁을 한 작품이었는데, 두 부분 모두 수상의 영예는 [기생충]이 차지했다. 아카데미의 변화의 필요성, 그리고 이 작품보다는 아무래도 [기생충]이 좀 더 신선하게 다가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전쟁이라는 건 그 참상을 생각할 때 피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인지상정인데, 전쟁 영화는 그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즐겨보는 장르이기도 하다. 일종의 대리 체험이 주는 만족감이랄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 Ryan)의 도입 장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일환이었던 오마하 해변의 전투 장면을 영화관에서 보면서 나는 정말이지 그 전투의 한복판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끔찍하고 생생했다. (이와는 달리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Dunkirk)는 집에서 보아서 그런지 영화의 스펙타클한 장면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생생함이 반감되어서 기대한 만큼 수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 영화가 준 충격으로,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또 다른 수작인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Band of Brothers]도 아주 관심있게 보고,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Stephen E. Ambrose의 동명의 논픽션까지 사서 읽기도 했다.

 

다시 한 번 말해보자면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갈등이 부딪히는 극한의 상황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부딪힘 가운데에서 인간의 극단적인 모습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직접 체험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두렵지만, 극화된 형식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작동하고 있지 않나 한다.  

 

일차세계대전의 한 가운데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부여받은 두 명의 병사들이 겪는 상황을 담아낸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영화의 장면들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다. 블레이크가 죽고 혼자서 적진을 지나던 스코필드가 총격을 주고 받는 장면에서 독일군의 총에 맞고 기절하는 장면에서 화면이 검게 변할 때까지 한 번의 롱테이크로 찍은 듯한 착각을 준다. 이러한 촬영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들과 일체감을 느끼게 하여 전쟁터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준다. 그 다음으로 또 놀랍다고 느낀 것은 전쟁터의 핍진성 있는 재현이다. 일차세계대전을 상징하는 참호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낸 것은 물론, 포탄 구덩이, 사람은 물론 동물들의 시체들까지도 하나하나 실감나게 재현해 내었다. 스토리의 전개는 전쟁터에서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상황들을 엮어 짜내었지만 주인공을 영웅으로 부각시키거나, 어느 한편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의도 없이, 전쟁이라는 상황이 만들어 내는 참혹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애써서 만든 영화이고 잘 만든 영화이다. 저명한 감독이 현대 영화 기술의 도움을 받아 일차세계대전을 다시 한 번 우리 앞에 가지고 온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