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서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 거기에서 보고 들은 것과 여행 중의 단상들이나 느낌들(단상이나 느낌 이런 것들은 나중에 글로 쓸 때 포착하기가 힘들다) 그런 것이 모두 소중하다면 여행 후 여행기를 적는 것 또한 여행의 연장이자, 체험과 기억과 느낌을 말로 구체화하여 포착해 놓는 시도이다. 이 여행 일주일 전에 나는 청도, 울산, 창원, 통영, 그리고 집중적으로는 거제 등을 2박 3일 동안 여행했다. 일주일도 안 된 시간에 또다시 2박 3일의 여행을 떠난 것은 동생이 내려와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기를 적는 것이 늦어진 것은 게으름 때문에 아니라, 그 전 여행기를 적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이다. 찍은 사진들을 바탕으로 찾은 장소며, 도로 등을 카카오 맵과 인터넷을 활용하여 글을 적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빼야 할지, 어느 정도 자세하게 적어야 할지 그런 것에 대한 선택이나 결단도 어렵고, 기억이 불분명한 부분도 꽤 있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는 글을 직접 써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평소의 지론인데, 사진을 포함한 글쓰기는 그냥 글쓰기와는 또 많이 다르다. 사진은 글로 설명할 필요 없이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사진 또한 선택이고 왜곡이지만, 글이란 대부분 해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그 전 주의 여행보다 좀 더 짜임새가 있고 알찼다. 이번 여행에서는 호수 기행이 그 중심에 있었고, 발바닥 통증과 탁구로 인해 한 동안 오르지 않았던 산에 오른 것(천관산)도 즐거운 체험이었다. 이 여행기를 완성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으나, 좀 더 속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
동생에게 엄마를 부탁하고(엄마는 2주 전에 넘어져서 허리 통증이 있었는데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고 해서 통증이 좀 심할 때면 약국에서 산 진통제를 드시게 했다. 하지만 계속 통증을 호소하셔서 결국에는 여행을 다녀온 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와 CT 촬영을 해보았는데, 넘어지면서 뼈가 좀 눌린 것은 맞지만 큰 손상을 입은 것은 아니라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여덟 시가 좀 넘은 시각 집을 출발했다. 일단 유가읍의 저수지 몇 군데와 창녕의 송곳저수지를 둘러보고 전라남도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미세먼지가 좀 있긴 했지만 출발할 때의 날씨는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상인동 집에서 출발하여 테크노폴리스로를 달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달성군 유가읍 테크노폴리스의 계명대학교 달성캠퍼스 내에 있는 상용지였다. 이곳은 카카오맵이나 내비에는 뜨지 않아 지난번 유가읍을 찾았을 때는 집에서 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빼먹고 말았다. 휴양림 입구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좀 올라가 도로에 차를 세우고 내려다보니 상용지가 바로 내려다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저수지는 개구리밥인지가 가득 덮여 있어서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주변은 나무와 풀이 또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이 저수지를 본격적으로 탐사하기 위해 휴양림 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니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거기에 차를 주차하고는 돌아 나왔다. 도로에서 곧바로 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휴양림 입구 사거리까지 걸어 내려와 운동장인지 넓은 공터를 지나 제방 아래에 섰다. 도랑도 하나 건너야 하고 제방에는 풀과 관목이 무성해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기다 반바지 차림이었다. 소류지 등 제대로 관리가 안 된 저수지를 찾아갈 때는 긴 바지를 입어야 풀이나 관목으로부터 생채기를 입을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저수지 탐방에 나설 때는 될 수 있으면 긴 바지를 입는데, 이번 나들이에는 그런 곳은 되도록 피하려는 생각에 반바지를 입고 나섰다. 하지만 첫 저수지부터 난관이었다. 나는 저수지도 카메라에 담았겠다 무리한 시도는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쉽게 포기를 했다(저수지와 관련해서는 한 장의 사진만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나머지 사진들은 [호수행] 참조).
이곳이 계명대학교 달성캠퍼스(내비를 보니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달성캠퍼스, 남쪽은 현풍캠퍼스이다. 그러니까 저수지가 있는 곳은 정확하게는 현풍캠퍼스이다)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건물은 하나도 없이 이름만 캠퍼스라고 붙여 놓으니 뭔가 좀 어색하다(210715 - 테크노폴리스로를 타고 좀 더 내려가다 보니 건물이 두엇 보였다). 테크노폴리스를 처음 계획했을 때와 현재의 상황이 좀 달라서인가? 자세한 내막은 당사자들이 알고 있으리라.
이때 신호가 와서 테크노폴리스 중앙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로 들어가 거사를 치렀다. 화장실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한창 청소 중이라 다소 민망스럽기도 했다. 그중 한 분의 옷차림이 작업복이라고 보기엔 화사한 것도 약간 의아했다. 거사를 치르고 나니 이제 민생고를 해결해야 했다. 편의점에 갔더니 샌드위치가 달랑 하나 남아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것을 고르고, 삼각김밥에다 커피우유 500밀리미터를 하나 구입하여 아침을 때웠다(지난 여행부터 아침 메뉴는 이제 이런 식으로 거의 공식화된 듯했다).
다음 행선지는 유가읍 금리에 있는 금동지였다. 유곡지와 함께 오동산 옆에 있는 이 작은 저수지는 카카오맵에 이름은 나오는데 저수지는 보이지 않고, 스카이뷰(위성사진)로 보아도 저수지가 확인되지 않아 나는 매립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네이버지도에는 하늘색으로 저수지가 표기되어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테크노순환로를 타고 달리다 용금공단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좀 들어가자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저수지 바로 옆에는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어 거기에다 차를 세웠다. 충전 중인 차는 한 대도 없었으나 전기차 초고속 충전소도 있었다. 저수지보다도 잘 꾸며진 잔디밭이 먼저 시선을 끌었고, 그 잔디밭엔 야자수가 몇 그루 심겨 있었다(대구에 야자수라니!). 남자 한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이곳의 정비 작업에 한창이었는데, 이 잔디밭에서 저수지로 이어지는 경사면에서는 연세가 있는 여자분들이 여럿 또 작업 중이었다. 저수지는 반 이상 연꽃으로 덮여 있고, 나머지 반은 개구리밥 같은 것으로 덮여 있어 상용지와 마찬가지로 물이 보이지 않았다. 연잎 사이로 피어오른 흰 연꽃도 몇 송이 보였다. 금동지가 매립이 안 된 상태로 있다는 것이 좋았고, 거기다 이쪽 용금공단에서 일하는 분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는 것도 좋았다.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 또한.
저수지 바로 옆 공장에 위치한 즐비하게 주차해 놓은 자가용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지 못한 것, 어머니의 노환 때문에 수입이 많지는 않았어도 지난 9년 동안 내 직장이었던 독학사칼리지를 그만 둔 것,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탁구는 마음껏 칠 수 있고, 또 지금 이렇게 남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시간에 여유롭게 여행을 떠난 상태라는 것, 제대로 이루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 놓지 않고 있는 작가에의 꿈, 그래, 어떤 방식이든 글을 쓰는 순간은 내 정체성을 확보하는 시간이라는 것, 거의 쉰다섯 해를 이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왔다는 것, 남들과 다른 나의 고유성 등등.
금동지에서 나온 다음 유곡리의 외평지(성지) 옆에 있는 무명지로 향했다. 대구에 코로나가 창궐하여 탁구도 칠 수 없었던 작년 3월말(200328), 이때 나의 유일한 낙이 인근의 야산들을 산보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는데, 이 날은 이 유곡리 옆 임도를 따라 무모하게도 비슬산을 차로 넘었다. 처음부터 비포장이었으면 엄두를 내지 않았을 텐데, 관음정사까지는 포장이 되어 있었고, 그다음에도 군데군데 포장이 되어 있어서, 곧 포장도로가 나올 것이라고 어리석은 기대를 했던 것일까? 어쨌거나 용고개를 넘은 다음 삼거리에서 길을 잘못 선택해(내려가는 길을 찾으려 했는데 둘 다 내리막이었던 듯하다) 또 각로암 옆으로 난 임도를 지나 헬기장까지 올라갔다. 끝까지 차를 몰고 올라간 것은 아니고 좀 걷기도 할 겸 중간에 차를 세울 만한 공간이 나오자 그곳에 차를 세우고 한 4,50분 걸어 올라가 멀리 봉우리를 하나 보고 내려왔는데 그곳이 관기봉인 듯하다. 다시 돌아내려 오니 창녕군 성산면 대산리였다. 이 대산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저수지인 월곡저수지(대산지)가 있다. 이 저수지는 비슬산을 배경으로 물이 정말 맑은 데다, 이 저수지 위쪽 비슬산 쪽에는 예쁜 집들이 있는 꽤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서 사진으로 담으면 근사하게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사실 까마득한 옛날에(아마도 이십 년 전쯤 이리라) 이 저수지를 처음 보았을 때는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적어 다소 실망을 한 기억이 난다. 그때와 지금 나의 호수를 보는 시각은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서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어쨌거나 이 날의 운행은 내 차에 꽤 많은 생채기를 내었다. 이 날 나는 대산로를 따라 화산리로 이어지는 임도도 탔는데, 이 길은 임도이고 좁긴 하지만 포장이 다 되어 있어서 스릴 넘치고 재미있는 구간이다.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서 운전을 해나가면서, 포장 구간은 어디까지인지 임도가 또 어디로 이어지는 것인지,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운전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날 내가 찾은 무명지는 이 임도를 조금 올라가다 좌회전하면 있는 곳으로 이곳 역시도 지난번 이쪽 저수지 탐방 때 빼먹은 곳이라 내친 걸음에 찾아보기로 했던 것이다. 콘크리트 소로를 따라 올라가니 급경사의 속칭 고바위(경사, 기울기를 뜻하는 일본말 こうばい[코우바이]에서 왔다고 한다)가 나왔고 이 고바위를 힘겹게 올라가니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이다. 차를 돌릴 만한 여유 공간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후진해서 내려간다는 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울퉁불퉁한 길을 조심스럽게 나아가 오른쪽으로 꺾자 집이 한 채 있고 다소 넓은 공지가 있어서 차를 돌리기에 충분했다. 개 한 마리가 낯선 이를 경계하며 요란스럽게 짖어대었다. 저수지는 물이 아주 맑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수초가 떠있는 아담한 크기로 친근한 이미지였다. 상부에는 흰색과 보라색 도라지꽃이 꽤 피어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잠시 머물다 요란한 개소리를 뒤로 하고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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