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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폭풍 속에서 -- 고호의 화첩에 바친다 -- 문정희

by 길철현 2022. 3. 8.

폭풍의 혈족

그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온 몸에 신이 올라서

노란 뇌빈혈로 쓰러졌다.

 

녹슨 쇳소리의 광기가 

그가 살고 있는 남불(南佛)

아를르의 적교(吊橋)를 건너

지중해를 돌아 단숨에 

내 추운 방으로 달려와

내 프라스틱 침대는 박살이 났다.

 

시대와 허위

그리고 저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완강한 우리들의 폭군을 향해

작두날을 세우고 

한바탕 무당 춤을 추다가

나는 망령같은 머리를 풀고 

비로소 그의 완벽한 폭풍 속에 누워 

오래 울었다.

 

그날 잠

내가 까만 절망이 쌓여있는

연탄광으로 내려가

떨리는 손으로 흰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을 때

 

그는 가해의 고통에 떨며 

귀를 잘라버리고

 

한발의 총알을 갈증처럼

자신의 심장에 대고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