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자화상 부근 -- 문정희

by 길철현 2022. 3. 8.

입에 문 파이프에서

진종일 가마귀들이 날아오르는 오후

 

조요로운 나무의자 위로

노오란 죽음이 내려 앉는

고호의 방을 두드린다.

 

창문처럼 걸려 있는 자화상 속에

삼나무들은 아름다운 고뇌를 울부짖다가

그대로 하나의 정물이 되는데

 

날 흔들지마!

날 흔들지마!

바늘 끝에 서 있는 슬픈 눈으로 

고호는 내게 한 잔의 독주를 권하며

먼 이별을 예비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