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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귀를 자른 자화상 -- 문충성

by 길철현 2022. 3. 8.

흰둥이, 깜둥이, 빨갱이, 파랭이, 노랭이---

색깔들의 싸움에 넌덜머리가 나고

색깍들의 노래 소리가 영영 들려오지 않았을 때

하릴없이 귀나 자르고 고호여

하는 짓이 부질없어지면 미친 세상

우리는 이 미친 세상을 빠져나가야 된다

미친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도망친 세상을 미친 세상이라 부르고

병원에 갇혀 미친 사람 치료를 받으며

정말로 미쳐나고 있을 때

다시 미친 세상 사람으로 돌아와

컴컴한 불빛 아래서

삶을 감자를 먹을지라도

우리는 도망칠 세상을 다시 꿈꾸느니

그것이 몽마르트를 언덕 위

물랭 루즈의 돌아감이거나

돌아감의 끝에서 시작하는 멍충이거나

까마귀들 비상으로 언제나

노랗게 익는 밀밭이거나

밀밭 어디엔가

은밀한 둥지 트는 종달새 가슴이거나

그 가슴에서 눈 뜬 종달새 새끼들 재재되는 세상이거나

고호여

존재의 그림자를 베어내는 풀밭이거나

삐걱이는 의자의 흔들림이거나

파이프 담배 연기거나

읽지 않는 노랑 책이거나

떠날 곳도 모른 채 정박해 있는 배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