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탈당한 여인을 그려놓고 빈센트 반 고호는 <슬픔>이라고
적어 넣었다. 슬픔이라는 외국어 표기가 그녀의 살을 향해 꼬
물꼬물 기어가는 과정을 나는 보았다. 육체의 형식에서 빠져나
온 삶의 광채가 나의 살깣에 붙어 치사하게 연명하고 있음도
보았다. 나는 그 여인에게 민중이라 이름붙였다가 칼끝으로 긁
어내고 수정했다. 그녀의 본명은 슬픔이 아니다. 가령 자궁이
라든가 부드러운 탐욕, 애인, 크레딧 카드, 가령 프라이드, 반지,
가령, 무도회에의 권유, 정관수술한 남편, 미래, 가령 그런 것들
과 사돈의 팔촌이라서 그녀의 이름이 슬픔으로 기록된 것은 아
니리라. 우리가 그저 슬픔으로 바라보는 것이리라. 슬픔은 그리
하여 그녀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거풀 위에 얹혀 있음
을 한 서양화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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