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 畵
김 종 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북치는 소년](민음사, 1979), p. 45.
<감상>
시의 생명이 비유와 압축에 있다고들 흔히 말한다. 이 시에는 전혀 비유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놀랄만한 감동을 준다. 일단 제목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묵화는 붓으로 그린 흑백 그림이다. 검은 부분과 흰 부분뿐이라는 사실은 우리 눈을 어지럽히는 알록달록함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눈을 현혹시키는 삶의 자잘한 색깔을 지우고, 굵은 선으로 처리했다는 말일 것이다. 그 묵화에 담긴 내용은 ‘물 먹는 소’와 ‘할머니’이다. 소와 할머니라는 존재가 환기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에 의하면 이 두 존재는 함께 지내면서도 서로 적막한 존재이고, 노역에 발잔등이 부은 존재이다. 삶의 힘겨움을 말없이 견디는 모습에서 우리는 벅찬 감동을 받게 되고, 몇 마디 안 되는 말로 이러한 정황을 명확하게 그려낸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과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오 규원 : [현대시작법](문학과 지성사, 1990), p. 23.
이 두 편의 시는(다른 한 편은 김춘수의 「處暑 지나고」) 외화성 언어 또는 꾸며쓰기가 없다. 그러나 두 편 모두 시로서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두 작품의 아름다움은 관찰의 섬세성과 그것을 언어로 가시화하는 묘사의 적절성에 있다. 「墨畵」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고 쓴 작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실제로 시인이 본 광경일 수도 있다. 어떻든 힘겹게 하루를 넘긴, 그래서 발등이 부은 할머니가 같은 처지에 있는 소잔등에 손을 얹고 있는 시의 세계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더구나 “서로 적막하다고”하는 구절에 오면 삶의 적막이라고 할까, 그러한 감정 속에 스민 따스한 사랑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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