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시 및 감상

이동순 - 운문사 비구니

by 길철현 2022. 12. 3.

운문사 비구니

                        이 동 순

 

운문사 비구니들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메주를 빚고 있다

입동 무렵

콩더미에선 더운 김이 피어오르고

비구니들은 그저

묵묵히 메주덩이만 빚는다

살아온 날들의 덧없었던 내용처럼

모두 똑같은 메주를 

툇마루에 가지런히 널어 말리는 

어린 비구니

초겨울 운문사 햇살은 

그녀의 두 볼을 발그레 물들이고

서산 낙조로 저물었다

 

[감상] 운문사 비구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메주를 빚는 모습을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묘사한 시. 우리의 삶이 폭풍우 치는 바다 같은 면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모든 것이 어쩌면 덧없고 부질없는 몸짓일 수도 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안으로 밀어두고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삶을 지혜롭게 건너는 방편인가? 

'한국시 및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은 - 섬진강에서  (0) 2022.12.05
김용택 - 섬진강 1  (0) 2022.12.05
유치환 - 석굴암대불 // 서정주 -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1) 2022.12.03
이연주 -- 겨울 석양  (0) 2022.06.11
문태준 - 가재미  (0) 202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