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시 및 감상

장정일 - 철강 노동자

by 길철현 2023. 4. 24.

받아쓰십시오. 분위기 있는

조명 아래 끙끙거리며

좋은 시를 못 써 안달이 나신

시인 선생님.

나의 직업은 철강 노동자

계속 받아쓰십시오. 내 이름은

철강 노동자. 뜨거운 태양 아래

납덩이보다 무거운 땀방울을

흘리는 철강 노동자

당신은 생각의 남비 속에

단어와 상상력을 넣고 끓인다지요

눈물방울은 넣었나요 그리고

달콤한 향료는?

망설이지 말고 당신 이모님과의

사랑 이야기도 살짝 섞으십시오.

여보세요 시인 선생

나는 남비에 시를 끓이지는 않는다오.

적어도 내가 시를 쓸 때는

거대한 용광로에 끓이지요

은유와 재치 따윈 필요도 없다오.

내가 시를 만들 때 필요한 것은

한 동이의 땀과

울퉁불퉁한 근육. 그것만 있으면

곡마단의 사자처럼 쉽게

온갖 쇠를 다룰 수 있지요.

조금 더 받아쓰십시오.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시를 쓰는지

지금 끓이는 한 덩어리의 주석이

바로 당신이 받을

원고료 한 닢!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써

주시겠오 시인 선생?

써 주신다면 나도 가만있을 사람은

아니라오. 그 대가로

영원히 닳지 않을 펜촉을 만들어 드리지요.

그 일은 아무 풋나기나 할 수 없는

무척 어려운 일이랍니다.

'한국시 및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정일 - 쉬인  (0) 2023.04.24
장정일 - 시집  (0) 2023.04.24
최두석 - 한장수  (0) 2023.04.24
전봉건 - 춘향 연가(부분)  (0) 2023.04.21
서정주 - 춘향유문 - 춘향의 말(3)  (0) 2023.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