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홍수에 젖은 세간들이
골목 양지에 앉아 햇살을 쬐고 있다
그러지 않았으면 햇볕 볼 일 한 번도 없었을
늙은 몸뚱이들이 쭈글쭈글해진 배를 말리고 있다
긁히고 눅눅해진 피부
등이 굽은 문짝 사이로 구멍 뚫린 퇴행성 관절이
삐걱거리며 엎드린다
그 사이 당신도 많이 상했군
진한 햇살 쪽으로 서로 몸을 디밀다가
몰라보게 야윈 어깨를 알아보고 알은체한다
살 델라 조심해, 몸을 뒤집어주며
작년만 해도 팽팽하던 의자의 발목이 절룩거린다
풀죽고 곰팡이 슨 허섭쓰레기,
버리기도 힘들었던 가난들이
아랫도리 털 때마다 먼지로 풀풀 달아난다
여기까지 오게 한 음지의 근육들
탈탈 털어 말린 얼굴들이 햇살에 쨍쨍해진다.
[출처] 일광욕하는 가구 / 최영철|작성자 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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