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시 및 감상

김선우 - 나생이

by 길철현 2023. 4. 24.

나생이는 냉이의 내 고향 사투리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나생이꽃 피어 쇠기 전에

철따라 다른 풀잎 보내주시는 들녘에

늦지 않게 나가보려고 조바심을 낸 적이 있다

아지랑이 피는 구릉에 앉아 따스한 소피를 본 적이 있다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그 자그맣고 매촘하니 싸아한 것을 나생이라 불렀는데

그때의 그 '나생이'는 도대체 적어볼 수가 없다

흙살 속에 오롯하니 흰뿌리 드리우듯

아래로 스며들어 발음인 '나'를

다치지 않게 살짝살짝 당겨 올리면서

햇살을 조물락거리듯

공기 속에 알주머니를 달아주듯

'이'를 궁글려 '새'를 건너가게 하는

그 '나새이',

허공에 난 새들의 길목

울 엄마와 할머니와 순이와 내가

봄 들녘에 쪼그려 앉아 두 귀를 모으고 듣던

그 자그마하니 수런수런 깃 치는 연두빛 소리를

그 짜릿한 요기(尿氣)를

 

'한국시 및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영철 - 일광욕하는 가구  (0) 2023.04.27
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  (0) 2023.04.27
황인숙 - 하, 추억치고는!  (1) 2023.04.24
황인숙 - 산책  (0) 2023.04.24
황인숙 - 봄날  (1) 2023.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