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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김기택 - 하품

by 길철현 2023. 4. 27.

다 본 스포츠신문을 다시 훑어보는
무료한 얼굴이 잠시 긴장하더니
갑자기 가쁜 숨이 몰아친다.
콧김과 입김이 심상치 않더니
코와 입과 턱에 근육이 돋더니
입이 공기를 크게 베어물며 열린다.
턱뼈에 무게를 싣고
느리지만 힘차게 벌어지는 입.
얼굴의 중앙을 한껏 밀어올린 정점에서
입은 숨을 멈추고 잠시 정지해 있다.
포효하는 지루한 침묵.
나태 속의 짧은 긴장.
수축된 안면근육에 밀려 반쯤 닫혀진 눈에
눈을 치켜뜬 지하철 승객들이 보인다.
치켜뜬 눈 속에 목젖과 목구멍이 비친다.
얼른 입을 닫아야 할 텐데
둥근 공기의 힘에 밀려 닫히지 않는다.
질긴 고기로 단련된 이빨도
공기 한줌의 완력에 밀려 할 일이 없다.
다물려 할수록 커지는 입속으로
무덥고 탁한 것들이 거세게 빨려온다.
입을 찢듯이 벌려 제 일 다 보고 나서
공기는 슬며시 입에서 빠져나온다.
얼굴 주위에서 파리처럼 날던 권태는
입이 닫히자 기다렸다는 듯
얼굴에 몰려와 덕지덕지 앉는다.
눈은 더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좌우로 빠르게 눈동자를 움직여
검은자위로 흰자위를 닦아보지만
붉은 실핏줄만 더 선명해질 뿐이다.
이렇게 소화 안 되는 공기는 처음이야.
입맛을 쩝쩝 다시며
얼굴은 무료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지하철 어둡고 어지러운 공기로 채워진 뱃속은
불만족스러운 듯 그르렁거리고
목젖은 딸꾹질처럼 맵다.
덩치와 폐활량에 비해 턱없이 작은 콧구멍이
수상하다는 듯 다시 두 구멍을 벌름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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