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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이윤학 - 캠핑

by 길철현 2023. 5. 16.

개천 바닥에 텐트를 치고 또 한겨울을 난 남자. 울긋불긋한 옷가지를 꺼내 개천 둑 철사 그물망에 널었다. 개량 한복을 차려입은 남자 홈바 괭이를 들고 텃밭을 일군다. 홀쭉한 사행천 갈대숲 기슭으로 말라붙었다. 조금 남은 곱슬머리 아지랑이로 빨려 나가고 봄바람이 잔설에 묻힌 남자의 콧수염 턱수염을 긁어 비듬을 날린다. 입 다물고 텃밭을 일군다. 홈바 괭이 날에 부딪히는 자갈. 고릿적 헤어진 전처의 잔소리를 이어준다. 아프다고 말해봤자, 엄살이 되어 돌아온다. 꽃 피기 전 아픔은 아무것도 아녔다. 정강이에서 핸드폰 진동이 시작된다. 핸드폰 화면 흰 민들레 압화 옆 잔나비 웃는다. 눈은 까뒤집혔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 입가를 내렸다. 말더듬이 흉내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