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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고스톱

by 길철현 2023. 6. 2.

치매 아들과 어머니가 화투를 아니,
치매 엄마와 백수 아들이 고스톱을 친다
거금 오만 원이 걸린 큰 판이다
밥상 겸용 간이탁자 위에 군용모포를 깔고
화투패를 섞을 수 없는 엄마를 대신하여
아들이 화투장을 탁탁 치며
김현식인가 누군가를 흉내내어
아수라발발타를 주문처럼 무한반복한다
같잖다는 듯 육십 난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만보던
엄마의 말문이 이윽고 열려
똥탕 똥탕 똥탕 지랄탕 지랄탕 탕 탕 탕
정말 환장의 콜라보이다. 
화투를 빨리 끝내고 싶은 아들이
아 씨발 초장부터 먹을 기 없네 
너스레를 떨며 쭉정이를 한 장 던지면
엄마는 아 먹을 기 없는 걸 구신같이 알고 딱 내놓네
낼름 받아먹는다
(Kiss me처럼 달콤함이 녹아내리는 연애시 한 편을
어젯밤 꿈속에서 완성했는데 제기랄,
깨고 나니 한 단어도 기억이 나질 않아)
엄마가 뻗어지지 않는 오른 팔 대신
힘겹게 왼팔을 뻗어 화투장을 가져가 아무렇게나 놓으면
아들이 엄마 광은 왼쪽, 띠와 열은 중간에, 쭉자는 오른쪽에
아무리 일러줘 봐야 반항은 거칠지 않아도 학습은 없다
판세는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엄마의 연전연승
김진의 돌직구는 가소로운 듯
화토 치나, 자부나
야이 바보야, 이 천치야, 이 축구야, 아하하하하
아들에게 속사포로 쏘아대고
또 못 먹어도 고 무대뽀 정신마저 통해
아들에게 쓰리고에다 피박을 씌워
기분이 천장을 뚫고 하이킥을 하면
그 어렵다는 곱셈 신공도 너끈히 해내는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선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야 등더리 건지러버 미치겠다
끌거라 끌거, 빨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간지러움이라고 했던가
죽으면 죽고를 입버릇처럼 되내이던 엄마에게도
긁을 수 없는 가려움은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인 모양이다
엄마의 등어리를 피가 나도록 긁을 때
인생의 온갖 부조리가 소실점을 지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폐부는 찢어질 듯 웃음으로 가득하다

 

* Kiss me라는 제목을 지닌 노래와 영화는 많다. 하지만 내가 염두에 둔 것은 1998년에 싱글로 발매된 Six Pence None the Richer의 노래이다. 이 시를 쓰고 난 다음 덴마크 그룹 Blink가 마찬가지로 1998년에 발표한 Kiss me 또한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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