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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영일대(초고)

by 길철현 2023. 6. 7.

2. 
 
그 흔한 연애 한 번 못하고
소위 명문대를 나왔건만 변변한 직장조차 못 구하고
(이건 안 구한 것도 있구나)
만학도로 들어간 대학원에서도
끝내 학위 취득마저 실패하고
제 깜냥도 모른 채
대작가의 꿈 하나만은
만사형통 조커마냥 가슴 깊숙이 품고 살아왔는데
등단조차 못하고 육십이 내일모레
(투고한 적도 없지 않나?)
하나하나 차분히 따져보면
이 모든 것이 본인 탓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지요
콧대 높은 정신과 의사의 지적에
채석강 절벽처럼  켜켜이 쌓이고 쌓인 좌절이
나를 모래 한 톨 크기로 짜부라트리고 말았다
 
밀리고 밀려 바닷가까지 밀려온 한 톨 모래인양
나는 어느 새 영일대 앞 바다를 바라보며
십원은 있어도 구원은 없다며
그 어디에도 언제에도 가닿지 못하는
뜻모를 말을 토해내고 있는데
철 이르게 해변을 찾은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웅덩이를 파고
파낸 웅덩이에 양동이로 물을 퍼나르고
날이 저물어 가는 것도 모른 채
열과 성을 다해 놀고 있었다
어리석게, 십원이니 구원이니 헛소리를 하지 않고
자신들의 놀이에 몰두하고 있었다
 
 
 
 
 
1.
그 흔한 연애 한 번 못하고
명문대를 나왔건만 변변한 직장조차 못 구하고
(이건 안 구한 것도 있구나)
만학도로 들어간 대학원에서는 
박사 학위도 못 받고
다른 건 몰라도 대작가의 꿈 하나만은 
가슴 한 가운데 품은 채 살아왔는데 
등단조차도 못하고 육십이 내일모레
(투고한 적도 없지 않니?)
치매 걸린 노모의 욕설 또한 넌더리라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 모든 게 당신이 잘못한 탓 아닌가요
콧대 높은 정신과의사의 지적이 맞는 듯하여
세상은 점점 더 무거워져 
전 지구의 무게로 나를 짓눌러
모래 한 톨의 크기로 짜부라들 지경
차라리 세상의 끈을 놓고 싶었으나
마지막으로 모래 한 알이 세상을 향해 울부짖으려 했던가
나는 어느새 영일대 앞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십원은 있어도 구원은 없다며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라도 찾아 헤매던 나에게
철도 아닌 해수욕장에서 아이들은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고
웅덩이를 파고
웅덩이에다 양동이로 물을 퍼나르고
날이 저무는 것도 모른 채
열과 성을 다해 놀고 있었네
어리석게, 이유도 십원도 구원도 찾지 않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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