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랑을 그리는 노래
이성복
그 봄 청도 헐티재 넘어
추어탕 먹으러 갔다가,
차마 아까운 듯이
그가 보여준 지슬못,
그를 닮은 못
멀리서 내젓는
손사래처럼,
멀리서 뒤채는
기저귀처럼
찰바닥거리며 옹알이하던 물결,
반여, 뒷개, 뒷모도
그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윷말처럼
비린내 하나 없던 물결
그 하얀 물나비의 비늘, 비늘들
(용어 설명)
죽지랑 : 신라의 화랑. 그와 득오의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반여 : 윷판의 중앙 (방)
뒷개 : 윷판의 첫 밭에서 앞밭으로 꺾이지 않고 일곱째 되는 밭 (앞밭 : 모의 자리)
뒷모도 : 윷판의 뒷밭에서 안으로 꺾인 첫째 밭 (뒷밭 : 윷판의 둘레를 따라 여섯 번째 자리인 뒷도부터 열 번째 자리인 뒷모까지의 밭. 또는 열째 밭)
(감상) 왜 이성복은 지슬지에서 죽지랑을 떠올렸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이 시는 이 시에 나오는 그가 실제로는 장옥관 시인이었다는 걸 알게되면 좀 풀려 나온다(무딘 연필 해설 참조). 그러니까, 이 시는 지슬지라는 저수지에 대한 시이면서 동시에 장옥관과 그의 시에 대한 시인 것이다(따라서 이 시를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장옥관의 시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의 이름조차도 생소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두 번 찾아본 지슬지에 좀 더 집중을 해보는데 지슬지가 준 인상은 이 시에 나오는 '비린내 하나 없던 물결'이라는 말에 딱 맞게 맑음, 그 자체이다(상류에 오염원이 전혀 없어서 그럴 것이다). '찰바닥거리며 옹알이하던'이라는 구절은 자연 현상을 인간의 언어로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의 어려움과 자의성을 떠올리게 한다. 바꿔 말해 기호계(상징계, 언어계)가 갖는 한계를 넘어가려고 몸부림치는 시의 몸짓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시는 전체적으로는 또 죽지랑과 득오의 관계처럼 한 인간과 그의 시를 요약함으로써 우정을 노래하고 있기도 하다.
지슬의 지에서 죽지랑을 떠올린 것인가?
(지슬이라는 말에서 이성복이 죽지랑과 윤슬을 떠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억측도 해본다.)
(무딘 연필 해설)
https://blog.naver.com/waffel/221680385033
득오의 모죽지랑가도 옮겨본다
향찰로 표기된 원문과 그 해독 및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① 원문
去隱春皆林米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貌史年數就音墮支行齊 目煙廻於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作乎下是 郞也 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② 해독
“간봄 그리매/모든 것
우리 시름/아
나토샤온 즈
/살쯈디니져/눈 돌칠
이예/맞보
디지
리/郎이야 그릴
녀올 길/다봊
잘 밤 이시리(간 봄 그리매/모든것사 설이 시름하는데/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이/주름살을 지니려 하옵내다/눈 돌이킬 사이에나마/만나뵙도록(기회를)지으리이다. /郎이여, 그릴 마음의 녀올 길이/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양주동 해독)
③ 현대어 풀이
간 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데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 하옵내다. 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만나뵙도록 하리이다.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이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이까. (최철 풀이)
해독상의 성과를 보면 양주동의 해독은 15세기의 음가를 중심으로 해석하였는데, 신라 시대의 음가가 과연 15세기의 음가와 동일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러한 견해를 대변하는 해독으로는 홍기문과 정열모의 연구를 들 수 있다. 홍기문은 신라어의 음가에 최대한으로 접근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특이하게 해독한 바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죽지랑가 [慕竹旨郎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여행 이야기 > 호수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윤학 - 저수지 (0) | 2024.10.17 |
---|---|
이해리 - 첫눈 내린 수성못에 (0) | 2024.08.21 |
이재호 - 호암지[충북 충주시 호암동] (0) | 2023.09.12 |
나희덕 - 천장호에서 (0) | 2023.06.30 |
신춘희 - 선암수변공원에서 (0) | 2023.06.30 |